46년 만에 학사모 … 이번엔 소설가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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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대 입학 46년 만에 졸업하는 '62학번' 이한준씨.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학번 5039.

26일 서울대 중문과를 졸업하는 이한준(67)씨의 것이다. 이씨는 1962년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했다. 단기(檀紀) 4295년이다. 당시 서울대는 단기의 끝자리 ‘5’를 앞에 붙여 학번을 매겼다. 46년이 지났다. 이씨가 드디어 학사모를 썼다.

입학 후 46년 만의 졸업은 서울대 최장 기록이다. 이씨는 입학 후 집안 사정 탓에 1학기 만에 중퇴했다. 2004년 가을, 환갑이 훨씬 지난 63세 나이에 재입학했다.

50년,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통에 아버지가 직장을 잃었다. 어머니의 삯바느질로 가족은 입에 풀칠을 했다. ‘경기중-경기고’ 출신인 이씨는 어릴 적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다. 그러나 가정형편은 대학 입학 후에 더 어려워졌다. 동생 학비까지 책임져야 했다. 1학기를 마친 뒤 직장 전선에 뛰어들었다. 곧 학교로 돌아올 것 같았는데, 시기를 놓치니 영영 돌아갈 수 없는 길처럼 보였다. 별정직 공무원, 외국인 기업 등을 거쳐 개인 사업도 했다. 그는 “남들처럼 살았고,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흘렀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이씨는 1996년 55세 나이에 당시 최고령으로 법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는 “시험에 합격하고 나니 공부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그러곤 인생에서 다시 없을 것 같았던 대학 생활에 도전했다. ‘노땅’ 소리 안 들으려고 학생들과 어울려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종교학 복수전공까지 했다. 이씨와 함께 여러 수업을 들었다는 조현희(23)씨는 “언제나 열정적으로 수업 분위기를 주도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졸업 후에 소설을 발표한다. 우리 분단 상황이 낳은 두 사람의 인생을 다뤘다고 한다. 그는 “졸업장과 함께 이 소설이 내 인생 마지막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했다. 

글=강인식 기자 , 사진=양영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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