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스포츠 스타들 "가자, 국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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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꽃가마에 태워드리겠습니다."

"홈런처럼 시원한 정치를…."

다음달 있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이런 구호들이 나올 참이다. 왕년의 스포츠 스타들이 정치에 도전하는 소리다. 현역 때의 인기와 페어플레이 정신을 무기 삼아 잇따라 국회 문을 노크하려 한다.

천하장사에만 10차례 오른 1980년대 씨름판 황제 이만기(41)씨. 체육학 박사인 그는 올 들어 인제대 교수직(사회체육학과)을 휴직했다. 마산 합포에서 출마하기 위해서다. "'웰빙'이 화두가 될 정도로 체육행정이나 생활체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스포츠 전문가로서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2000년 16대 총선 때 한나라당 공천 번복 소동을 겪으며 그는 정치판에 환멸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지역감정 타파에 애써 달라"는 열린우리당 쪽 제의를 받고 결심했다. "참여정부와 코드도 맞는다"는 그는 6일 당 후보 경선에 나간다.

그의 선거 참모는 인제대 동료 교수들. 스포츠의학자인 김진홍 교수와 환경학자인 정수호 교수 등이다. 지난달 마산발전시민연대회의라는 조직도 만들었다. 본격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제자들이 자원봉사를 해줄 것이니 선거비용은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캐치프레이즈는 '국민이 꽃가마 타는 희망의 정치'다. 천하장사 이미지를 살렸다. 혹 그가 국회의원이 되고, 원내에서 몸싸움이라도 벌어진다면 그의 힘이 발휘될까.

프로야구 원년인 82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 김유동(50.당시 OB베어스)씨도 이번 선거에서 '9회말 역전 홈런'을 노린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만루홈런을 날려 스타가 된 그다.

86년 청보 핀토스에서 은퇴한 뒤 서울 역삼동에서 갈비집을 했다. "대부분의 손님이 저열한 정치판을 지탄하곤 했지요. 그러던 차에 공천 제의가 왔어요."그는 96년 자민련 공천으로 부천을에 출마했다. 하지만 그때도, 그 다음인 16대 때도 쓴잔을 마셨다.

"지난 10년간 파울볼만 100개 정도 친 기분이에요. 이젠 홈런을 칠 때가 됐지요?" 김씨는 지난달 한나라당으로 적을 옮겼다. "스포츠맨 특유의 근성으로 당내 공천 경쟁부터 뚫어내겠다"고 말한다.

태릉선수촌장과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을 지낸 김봉섭(55)씨는 민주당에서 중랑갑 공천을 받았다. "새벽부터 조기축구장과 배드민턴장을 돌면서 발로 뛰고 있지요. 당선되면 체육전문 의원이 돼 삶의 질 향상에 몰두할 겁니다." 그는 국가대표 배드민턴 선수 출신이다.

'빠떼루 아저씨'로 유명한 아마레슬링 출신 김영준(56.경기대 교수)씨도 출마(일산을)를 저울질하고 있다. 한나라당 공천에서는 이미 탈락해 무소속 출마를 고려 중이다. 그의 슬로건은 '빠떼루 없는 세상을 만들자'.

이 밖에 183연승 대기록의 이창호(63)전 미도파 배구팀 감독은 열린우리당의 비례대표 후보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다. 정통 운동선수 출신이 없는 대한민국 국회에 과연 이들 중 누군가가 첫 테이프를 끊을 것인가.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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