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향기] 아버지의 눈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6면

곧 기차가 서울역에 도착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자 나는 짐을 챙기며 휴대전화를 꺼내든다. 고향 부산에서 잘 도착했다는 연락을 기다리고 계실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기 위해서다. 늘 가장 마음이 저려오는 순간이다. 방금 전까지 가족들과 함께 있었는데 몇 시간 만에 나 혼자 낯선 도시에 있게 된 서글픔. 게다가 그 순간에 부모님의 염려 어린 목소리까지 전화로 듣게 되면 갑자기 다시 기차에 오르고 싶은 어린애 같은 바람이 가득 차 오르곤 한다.

완고하게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 결국 져 주시면서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었을 때, 나는 설렘과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하지만 아버지와 짐을 가지고 서울에 도착하면서 조금씩 그 기대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친척집에 내 짐을 풀고 돌아가시는 아버지를 배웅하는데 마치 영영 헤어지는 것만 같아 어찌나 눈물이 쏟아지는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시던 아버지 역시 눈물을 참느라 애를 먹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홀로서기는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눈물도 유전인지, 부전여전으로 눈물이 많은 나는 부모님한테서 전화가 올 때마다 터져 나올 것만 같은 울음을 참느라 얼른 전화를 끊어야 했다. 그때 부모님은 내가 전화를 잘 안 한다고 섭섭해하셨지만 부모님 목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차마 전화기를 들지 못했던 내 마음을 지금도 모르실 거다.

벌써 유학생활도 3년째로 접어드는데 아직도 우리 부녀의 눈물은 그칠 줄 모른다. 출장으로 서울에 오신 아버지와 모처럼 밥을 먹었을 때, 나는 밥을 드시고 오셨다는 말씀에 아버지 몫까지 밥 두 그릇을 말끔히 비워냈다. 그리고 얼마 뒤 어머니와의 통화에서야 아버지께서 그 모습에 마음이 아파 또 눈물을 삼키셨다는 걸 알게 되었다.

며칠 전에는 퇴근하신 아버지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오늘 기차가 지나가는 걸 보는데 이제 저 기차가 너 태우고 멀리 가겠구나 생각하니 기차가 그렇게 밉더라." 그 말씀을 하시며 어느새 또 눈시울이 붉어지신 아버지를 보며 나도 그만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매일 가족들 얼굴 보면서 학교에 다녔다면 이렇듯 사무치게 그리운 감정을 알 수 있었을까? 늘 같이 있을 땐 하루가 멀다하고 다퉜던 동생들도 언제부턴가 애틋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불쑥 안아볼라 치면 동생들은 징그럽다고 도망가기 일쑤지만 말이다. 중.고생 시절에는 그저 막연히 자유를 바라며 독립을 꿈꾸기도 했지만 이젠 가족이 나에게 얼마나 큰 의미인지를 참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내 꿈은 서울 중심에 멋진 집을 장만해서 가족들과 다시 함께 사는 것이다.

"울보 아버지, 늘 밝고 강한 모습 보여주시는 어머니, 그리고 이제 어엿한 대학생인 수미와 어느새 어른스럽게 커 버린 막내 준식이, 다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거 알죠? 보고싶어도 여름방학 때까지 꾹 참을게요."

이수용(21.서울 성북구 석관2동)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