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왕안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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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판관 포청천’으로 유명한 포증(包拯)이 북송의 개혁론자인 왕안석(王安石), 『자치통감(資治通鑑)』을 지은 사마광(司馬光)과 함께 어울려 나타나는 기록이 있다. 왕안석과 사마광은 서로 두 살 터울인 친구 사이, 포청천은 이들보다 약 20살 많은 상관으로서다. 역사 속 유명한 인물이 한자리에 모습을 드러내 꽤 흥미를 끄는 장면이다.

모란이 활짝 핀 어느 봄날. 평소 엄숙하기만 한 포증도 그 흥을 이기지 못한다. 그는 파격적으로 사무실에서 “술 한잔 하자”며 부하들을 부른다. 왕안석과 사마광은 모두 술을 즐기지 않는 성격이다. 그럼에도 사마광은 엄격한 상사의 권유를 이기지 못해 술잔을 받아든다.

이어 왕안석의 차례. 주전자를 들어 술을 따라주려는 포증에게 “저는 술을 못합니다”며 거절하는 바람에 분위기는 얼어 붙는다. 상관의 거듭된 권유, 주변 동료들의 재촉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뜻을 관철한다.

왕안석의 모진 모습은 다른 일화에서도 나타난다. 황제 인종(仁宗)은 아주 기발한 제안을 한다. 궁궐 후원의 연못(御池)에서 낚시를 한 뒤 잡은 생선을 함께 요리해 먹자는 것. 대신들은 앞다퉈 낚싯대를 들고 나선다. 하지만 왕안석은 도대체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오히려 금 쟁반에 담긴 미끼를 음식으로 잘못 알고 슬금슬금 먹어 치운다. 눈을 흘기는 황제의 모습에는 아랑곳없이.

뜻은 거창했지만 그의 개혁은 실패한다. 관아의 물자조달 방식을 바꾼 균수법, 농촌의 대출업을 개혁한 청묘법 등 획기적 정책은 줄줄이 빛을 보지 못한다. 상사인 포청천과 황제 인종의 마음을 사지 못했던 그의 그릇 크기 때문이다. 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의 성격은 친구인 사마광과 중도 성향의 소식(蘇軾), 그에 앞서 개혁 의지를 지녔던 한기(韓琦) 등을 모두 적으로 돌려놓고 만다.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한 합의 없이 국무위원을 내정해 무대에 둘러 세우는 대통령 당선인의 모습에서 왕안석의 결기가 느껴진다. 정략적으로 법안에 접근했던 통합민주당의 자세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도 모든 것을 이끄는 대통령의 자리에 오를 당선인의 자세는 달라야 한다.

사람을 모으지 못하면 지도자의 정책은 고립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작은 일이면 모를까, 국가의 대사를 이끌고 다듬는 과정에서는 반대자의 뜻을 수용하는 풍도(風度)가 필요하다. 사실 왕안석의 예를 들 것도 없다. 코드와 고집으로 개혁의 기운을 스스로 꺾어야 했던 전임자의 5년이 눈앞에 있지 않은가.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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