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선거중립의무 준수 요청'에 야당-청와대 격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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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상 공무원의 선거중립의무 준수규정을 위반했다며 선거중립의무 준수를 중앙선관위가 요청한데 대해 야당과 청와대가 정면 충돌하는 등 선거 20일을 앞두고 정국에 파란이 일고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4일 노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재발방지 약속 등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노대통령에 대한 탄핵발의 여부를 본격 검토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4일 "일단 헌법 기관인 중앙선관위 결정은 존중키로 했다"면서 "그러나 이번 결정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고 말했다.

◇민주당=민주당은 이날 오전 선거법 위반에 대한 노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촉구한데 이어 이날 저녁 10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탄핵발의 착수여부를 논의키로 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에 대한 탄핵 발의가 정국에 미치는 파장과 민감성을 감안, 노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등 선거법 위반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이 없을 경우 탄핵을 발의하는 수순을 밟겠다는 입장을 정리할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 대변인은 "탄핵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반응과 정서가 있고, 탄핵이 정치사에서 생소하고 우려하는 국민이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선관위조차 노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을 명확히 하는 상황이므로 탄핵발의 여부를 검토할 상황이라 의원들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밝혔다.

조순형 대표는 이날 회의에서 "선관위가 반쯤 가는 결론을 내렸는데 이렇게 하면 안된다"며 "벌칙이 없으니 국회가 탄핵제도 활용이나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게 결론 아니냐"면서 "노 대통령이 일련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공식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면 당 차원에서 명쾌한 결론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한나라당도 주요 당직자회의와 운영위원회를 잇따라 열어 법리적으로 탄핵사유가 충분하다고 판단하고 조만간 야3당 원내총무.원내대표 접촉을 갖는 등 민주당, 자민련과 협의를 거쳐 탄핵추진 여부를 신중히 결정키로 했다.

그러나 당장 탄핵추진을 발의하는 등 공세를 취하기 보다는 대통령의 대국민공개사과와 재발방지약속 요구, 검찰의 수사촉구 등 단계적으로 공세수위를 높여갈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병렬 대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책을 세워야지, 서둘러 탄핵하자든지 이런 얘기를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면서 "선거도 중요하지만 국기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사덕 총무는 "법리적으로 탄핵사유가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치적 판단은 다른 야당과의 협의절차가 아직 남아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청와대는 이날 김우식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보좌관회의를 열어 이같은 입장을 정리했다고 이병완 홍보수석이 전했다.

이 수석은 브리핑에서 "선관위로부터 결정문 통보를 받았고, 오늘 회의에서 이를 면밀히 검토한뒤 수석.보좌관들의 의견을 모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면서 "대통령은 별다른 말씀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선진 민주사회에서 광범위한 정치활동이 보장된 대통령의 의사표시를 선거개입으로 재단한 경우가 없다"면서 "(현행 선거법 관련조항은) 관권선거 시대의 유물로서 우리는 시대의 흐름에 맞게 제도와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 대통령의 발언이나 행동 자제가 있을 것이냐'는 질문에 "대통령은 정무직 공무원으로서 필요한 정치적 발언이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도록 현행 선거법에 돼 있다"며 "이런 선거법 해석이 시대흐름을 반영한, 선진 민주사회에서 이뤄지는 일반적 관행에 따라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동원, 정당을 만들고 공천을 좌지우지하고 직접 선거를 지원하며, 통반장과 공무원을 동원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선거법은 합리적으로 개혁돼야 한다"며 "대통령이 모든 특권과 기득권을 포기한 시대 흐름에서 대통령의 정당한 합법적 권리는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수석은 끝으로 "중립 의지를 말한다면 노 대통령처럼 중립의지를 행동하고 제도적으로 실천한 경우가 있었느냐"고 반문하고 "참여정부는 투명하고 공정한 선거관리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대통령의 국정활동을 흔들어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정략적 행위는 즉각 중단해달라"고 주문했다.

한편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기자회견을 갖고 "선관위의 자율적인 판단이라기 보다는 야3당이 강제한 측면이 있어 유감이다"면서 "대통령의 자유로운 의사표시가 언론과 질문.답변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선거개입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대통령책임제하에서 임기보장 대통령이 책임질 기회는 각종 선거다"며 "대통령은 책임있는 여당이 필요하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치적 의사표현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센터,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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