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적 이정훈 "32세 야망의 계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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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지난해 한화에서 삼성으로 이적한 외야수 이정훈(李政勳).
그에겐 늘 「악바리」라는 닉네임이 따라붙는다.
경기나 훈련때 악착같은 승부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해 붙어다니는별명이다.
그의 승부근성은 프로입단을 앞둔 동아대 4년때(86년)부터 유명해졌다.
당시 그를 1순위로 지명하려던 청보 핀토스는 허구연(許龜淵)감독,강태정(姜泰貞)타격코치를 내세워 그에게 입단테스트를 받게했다.그러자 이정훈은 『대학 최고 타자인 내가 입단테스트를 받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며 일언지하에 거 절했다.
이에 화가 난 청보 코칭 스태프는 그를 외면,연세대졸업반인 이상훈(李常勳)투수를 뽑는 우(愚)를 범했다.
청보가 외면하자 빙그레구단이 이정훈을 지명했고 이후 신생구단빙그레는 꼴찌 라이벌이던 청보를 두고두고 눈물짓게 했다.
입단때부터 당찬 태도를 보인 이정훈은 프로무대에 와서도 동료들이 시샘할 정도로 강훈을 쌓았다.
타석에 들어서면 상대투수를 잡아먹을듯 노려보는 그에게 투수들은 슬금슬금 피해갔다.
〈成百柔기자〉 그는 입단 첫해에 좌.우로 안타를 뿌려대며 타율 0.335를 기록,선수의 재능을 볼줄 모르는 청보 코칭스태프를 비웃었다.이후 그는 88년 0.309,89년 0.323등으로 3년연속 3할대를 때리며 한화의 기둥타자가 됐다.
특히 그는 지난 91년 한.일슈퍼게임때 한국프로대표팀의 1번타자로 나서 일본의 자존심 구와타(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초구를 강타,센터앞에 깨끗한 안타를 뽑아내며 기염을 토했다.
이후 구와타투수는 자신의 자랑인 강속구 대신 포크볼을 구사,한국팀을 상대했다.한.일슈퍼게임 6차전을 모두 마친후 일본기자들은 인상적인 타격을 보인 이정훈에게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이정훈은 『일본이 한국보다 앞서 있는 것은 사실』이 라고 겸손히 말한후 『그러나 일본에 오더라도 나는 1번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있게 대답,배석한 한국관계자들을 뿌듯하게 했다. 이정훈은 결국 한국쪽 MVP로 뽑혔다.
올해부터 이정훈은 삼성유니폼을 입고 새롭게 타석에 서게 됐다.이제 그의 나이도 어느덧 32세.몸과 마음이 80년대말과 같지는 않다.
특히 93,94년에는 손목부상으로 타율이 0.225와 0.247로 떨어졌다.
올해 고향땅 대구로 돌아오면서 그는 많은 생각을 했다.일본의간판타자인 오치아이 히로미쓰(43)처럼 자신도 마지막 불꽃을 피우리라 다짐하고,또 다짐했다.
그에게 맡겨진 일은 타격 외에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승부근성이 나약한 삼성 후배들에게 맹렬한 프로근성을 심어주는 일이다.최근 그는 『눈물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너희들은 진정한 프로가 아니다』라며 후배들을 몰아세우고 있다.최고의 대우를 받으면서도 마치 응석받이처럼 불평불만을 터뜨리는 후배들을 더이상 참고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엔 지난해 LG선수들을 다그쳐 승부욕을 불러일으킨 한대화(韓大化)의 목소리가 이정훈을 통해 들리는 듯하다.
따라서 올해 삼성의 성적 역시 LG의 경우와 같이 이정훈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고 단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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