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합격한 '독서왕' 문형범 군 - "끊없는 호기심의 발동…

중앙일보

입력


2006년 11월 KBS ‘도전! 독서골든벨’에서 황금종을 울리며 독서왕으로 등극했던 문형범(19·춘천고 3)군. 이후 자신의 독서비법을 담은 책까지 쓰며 입소문을 탔던 그가 올해 고려대 경영학과에 합격했다. “책이 대학 보내줬다”고 웃음짓는 문군을 춘천, 그의 집에서 만났다.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죠. 먼길 오셨는데, 제가 말주변이 없어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앳된 모습의 문군은 “새벽 4시까지 책을 읽느라 머리도 다듬지 못했다”며 쑥스러워 했다.
집에 들어서자 독서왕답게 이방 저방 책이 가득했다. “이렇게 오실 줄 알았으면 책을 정리하지 말 걸…. 며칠전, 친척들에게 책을 많이 나눠줘서 지금은 1000권 정도 밖에 없어요.” 문군 어머니가 말을 거들었다. 다 치우고 난 게 1000권이라니. 도대체 하고많은 책을 언제 어떻게 읽었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책과 친해지기- 시작은 ‘재미
“요즘 논술공부니 뭐니 해서 억지로 책 읽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얻는 것도 있겠죠. 그러나 강요에 의한 독서는 책과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돼요.”

문군의 책읽기 비법 1단계는 ‘책과 친해지기’. ‘두껍고 어려운 책은 좋고, 만화책은 나쁘다’는 편견부터 버려야 한다. 처음에는 흥미있는 분야, 재미있는 책부터 골라 읽어야 한다는 게 그의 독서철학이다. 만화책부터 읽기 시작했다는 문군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만화로 된 한국사 이야기 등 그림이 많은 책을 봤다”며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밖에서 뛰어놀고 게임하는 게 더 재밌지 않냐”고 묻자 단호하게 ‘노’라고 답했다. 그는 “책 속에는 온갖 세상사가 담겨 있다. 끝없는 호기심의 보고(寶庫)이기도 하다. 비록 간접경험이지만 다른 어떤 경험보다 흥미롭다”고 확신했다. 관심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문군은 “쉬운 것부터 읽으면 책 읽는 과정에서 궁금한 점들이 생겨나고, 궁금증을 풀기 위해 관련 분야 또다른 책을 읽게 된다”고 말했다. 역사 관련 서적도 술술 읽힌다는 문군은 “역사가 어렵다는 건 편견일 뿐”이라며 ‘고대의 성형술’ 등 흥미로운 주제의 책을 추천했다.
 
독서의 생활화- 독후감은 ‘생각정리기’
문군은 “학교마다 도서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데 이용하는 학생이 없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마음껏 책을 읽고 싶어 중·고등학교 시절 독서부에서 활동했다. 돈 안 들이고, 발품을 안 팔아도 실컷 책을 읽으니 일석이조라고 했다.
학교에서도 하루 1권씩은 반드시 읽었고, 하루 2~3권씩 집에 가져와 시간 날 때마다 읽었다. 문군은 “책은 시간을 정해놓거나 공부할 때처럼 목표량을 정하고 읽어서는 안 된다”며 “생각날 때, 읽고 싶을 때 봐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이해되지 않거나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구절은 체크를 해두었다. ‘내 생각은 이렇다’ ‘같은 내용이지만 전문가 누구는 다르게 얘기했다’는 식으로 적었다. 사고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문군은 “책에 궁금한 점을 적어놓으면 한 사람의 주장에 매몰되는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감명깊게 읽은 책은 반드시 독후감을 썼다(1개월당 2~3편). 문군은 “독후감은 흩어져 있는 지식과 생각을 하나의 덩어리로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한다”며 “글쓰기를 통해 통합적 사고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독서왕, 공부왕 되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
공부얘기가 나오자 어머니가 한마디 거들었다. “독서에만 매달리고 학과공부는 소홀히 해 걱정도 많았는데 막상 고등학교 올라와 열심히 하더니 성적이 쑥쑥 오르데요.”
문군은 “책을 통한 배경지식이 많으면 공부를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언어영역은 더더욱 유리하다. 지문 읽는 속도는 누구보다 빠르다. 읽었던 책의 지문이 수능에 출제될 수 있고, 생소한 지문이 나와도 배경지식을 토대로 유추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아 빨리 읽고 빨리 풀 수 있다.
외국어영역도 마찬가지. “한국어 잘하는 사람이 영어도 잘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단어만 충분히 알면 영어 지문 읽는 속도는 한글 읽는 속도와 비례한다”고 말했다.
사회탐구 역시 공부하기가 편했다고 소개한다. 교과서 내용은 이미 책을 통해 익힌 지식이었다는 것.

문군은 “공부를 잘 하기 위해 책을 많이 읽는다고 생각하지 말고, 독서를 통해 깊게 공부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며 “책을 많이 읽으면 수월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자명하다”고 강조했다.

:::독서 길들이려면…

1. 책읽을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라= 책읽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는 책과 친해질 수밖에 없다.
2. 독서를 ‘취미’라고 생각하라= 강요받는 순간 책읽는 데 흥미를 잃는다. ‘즐긴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라.
3. 재미있는 책부터 읽어라= 독서가 싫다면 관심분야 쉬운 책부터 읽으면서 흥미를 들여라.
4. 어떤 책을 읽어도 사고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게임 관련 도서더라도 책은 책이다. 어떤 책을 읽어도, 책읽는 동안 머리는 돈다.
5. 독후감 쓰는 습관을 들여라= 독후감을 쓰면 기억이 오래간다. ‘글쓰기’를 어렵다고 생각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는 ‘기회’라고 생각하라.

프리미엄 최석호 기자 bully21@joongang.co.kr
사진=프리미엄 최명헌 기자 choi315@joongang.co.kr

어머니에게 물어보니…

문형범군의 어머니 박화자(47)씨는 전형적인 ‘보통 아줌마’의 모습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하숙을 치며 근근이 살림을 꾸리느라 바깥출입도 여의치 않은 터. 치맛바람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들을 독서왕으로 키운 비결을 물었다.

"책읽기 강요 안해…생각하는 습관 길러줬죠"

"비법이요? 그런 거 없어요. 단지 아이가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어준 것 밖에는요….”
생후 4개월 때부터 전래동화·과학동화책 100권을 사 읽어줬다.
“물론 못 알아들었겠죠.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많은 공부가 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산모들이 태교동화 읽는 것처럼요.”
 
“두살이 되자 조금씩 책의 내용을 알아듣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했다”는 박씨는 그때부터 자신이 읽어준 책의 내용을 토대로 문군이 연극 또는 노래로 상황극을 펼쳐보도록 했다. 그는 “아이가 직접 몸동작으로 표현하니 내용을 쉽게 이해하고, 재미를 느껴 ‘또 읽어달라’고 졸라댔다”며 “네살 때부터는 내가 한줄 읽고, 아이가 따라 읽는 방법으로 한글을 깨치게 했다”고 말했다.
 
“새책을 사주고 싶었지만, 집안사정이 넉넉지 않아 1년에 1~2차례 서울에 올라갔어요. 청계천 헌 책방에 들러 동화책을 100권씩 사들고 왔죠.” 사온 책은 집안 여기저기 흩어놓았다. 어디 가든 책을 접하게 하려는 박씨의 속셈(?)이었다. 7세부터는 1주일에 2번씩 문군을 데리고 인근 도서관에 갔다. 주말에는 아버지를 대동해 하루종일 도서관에서 온가족이 책을 읽었다.

박씨는 “어려서부터 도서관에 가는 습관을 들이니 자연스레 ‘주말은 도서관 가는 날’로 생각했다”며 “도서관에 다닌 지 6개월이 지나자 아이 스스로 ‘어떤 책이 좋은가’를 판단하더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독후감 쓰는 습관을 들이도록 했다. “독후감을 2~3편씩 쓰게 하는 학교 방학숙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는 박씨는 1년에 독후감 20편 쓰기 원칙을 정해놓고, 실천하도록 했다.

‘자라나는 아이에게 TV는 안된다’는 게 박씨의 철학이다. 문군이 태어나고부터는 자신도 좋아하던 드라마까지 끊었다.
그는 “TV 프로그램은 시청자들에게 재미 위주로 최대한 쉽게 내용을 전달하려 하기 때문에 TV에 익숙해진 아이는 어려운 문제에 부닥쳤을 때 깊게 생각하려 하지 않는다”며 “독서를 통해 생각하는 습관을 키운 게 형범이가 명문대에 합격한 비결”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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