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지나 계단 넘어 우리 집 -철산동 골목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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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역에서 5분 거리’, ‘지하철역과 연결되어 있는 주상복합아파트’ 좋은 집의 조건으로 교통편을 고려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다. 깔끔한 보도블록으로 모양을 낸 인도를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아파트촌에 도착한다. 샛길이며 골목길은 지나지 않아도 된다.
‘골목대장’, ‘골목 사이로 새어 나오는 전등불’의 모습은 추억 속에서나 기억될 일이다. 하지만 골목길의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골목길로 이어지는 동네의 추억과 삶을 기억하고 기록하려는 흔적을 광명시 철산동에 가면 볼 수 있다.
철산동 중심 시가지는 종합 쇼핑몰과 상점들이 밀집돼 있어 연일 사람들로 북적되는 곳이다. 그 뒤로는 새로 지은 아파트가 있고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달동네’라 불리는 동네가 있다. 지하철 7호선 3번 출구로 나와 신흥약국이 보이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내리막길이라곤 찾을 수 없는 산동네가 있다. 오래된 연립주택과 금방이라도 벽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주택들이 눈에 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재개발로 사라질 동네이고 허름하고 낡은 모습이 역력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골목길의 추억을 기억하기 위해 2006년 ‘철산동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그 흔적은 동네 곳곳에 남아 있다. 동네 이미지에 관한 매뉴얼 북을 만들고 골목, 계단마다 그림을 그렸다. 달동네의 추억을 느끼고 싶고, 공공미술을 직접 보고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끔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다. 이 곳을 들를 때는 꼭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무리지어 다니지 말 것,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히 배경만을 담을 것.’ 등 ‘아니 온 듯’ 다녀가는 곳이다.

<그림1> 동네 입구에서 도덕산 공원까지 가는 길이 안내되어 있다. 골목을 잘 따라 가야 작품을 볼 수 있지만 지도를 따라 가도 중간에 길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안내도는 참고만 할 뿐, 여유를 가지고 이 골목 저 골목 걷다보면 신기하게도 골목이 이어진다. 놓쳤다고 생각했을 때 다시 길을 찾는 곳이니 처음부터 헤맬 것을 각오하고 발을 떼는 것이 좋겠다.

<그림2> 1963년, 1976년, 2005년 철산 4동의 지도다. 변하지 않은 건 이 곳 달동네 뿐 인 것만 같다.

여섯 개의 계단에서 보물찾기, 재미 찾기.

달동네에는 여섯 개의 계단에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하지마 계단’, ‘여보세요 계단’, ‘행운길 계단’, ‘도깨비 빤쯔 계단’, ‘얼음땡 계단’ 이 그것이다. 허름하고 가파른 계단이지만 놀이를 하면서 조금이라도 재미있게 걸어가자는 의미로 만든 것이다. 동네 주민들, 아이들 뿐 만이 아니라 민건협과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팀 등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었다.

<그림3> 꽤 경사가 가파르고 길게 이어진 계단을 따라 클로버 모양의 그림이 있다. ‘네잎 클로버를 찾아라.’는 문구가 벽에 적혀 있다. 계단을 따라 네잎 클로버를 찾아보자. 그 만큼의 행운이 찾아온다.

<그림4> 벽을 따라 그림이 그려져 있다. ‘흔들흔들’, ‘걷다.’, ‘꿈’, ‘사과를 받아줘’ 등 재미있는 모양과 글귀가 보인다.

<그림5> 아래에서 위로 연결된 종이컵을 가지고 전화놀이를 하도록 만들어진 ‘여보세요 계단’, ‘도깨비 빤츠’ 의 악보를 근처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악보를 보고 계단 놀이를 할 수 있는 피아노 계단으로 불리는 ‘도깨비 빤츠 계단’, 계단을 하나씩 오를 때마다 파란색이 엷어지며 하늘에 닿는 ‘바다 끝 하늘계단’ 이 있다.

<그림6> 후미진 골목에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은 뭘까. 노상방뇨, 침 뱉기, 술 먹고 오바이트 등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지마 계단’에 재미난 그림이 알려주고 있다.

<그림7> 끝이 보이지 않는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도덕산 공원에 이르기 전 주시가지를 한눈에 바라다 볼 수 있다.

<그림8> 고개를 돌리면 달동네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빽빽하게 붙어있는 주택들 사이로 추억이 가득한 골목과 계단은 얼마나 될까.

<그림9> 내려오는 길 벽을 따라 다양한 컨셉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10> 도중에 길을 잃어버려도 즐겁다. 올라오는 길에 보지 못했던 재미있는 표지판들이 미소를 짓게 한다. ‘주차금지’를 나타내는 안내판이 정겨워 보인다.

사진: 백광수 http://bks81.egloos.com 제공

객원기자 장치선 charity19@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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