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春困症에 거린 경제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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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몸이 노곤함을 자주 느끼는 걸 보면 정녕 봄이 왔나 보다.몸의 피곤은 흔히 졸음을 몰고와 한낮에도 때로는 몽롱한 의식속으로 빠져들게 하곤 한다.봄은 역시 봄인가 보다.그러나 계절이 바뀌면 춘곤증(春困症)은 곧 사라질 것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 일반의 경제의식이 계절의 흐름과 관계없이 항상 비몽사몽을 헤매며 혼미를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주어진 경제자원의 제약을 감안해 최적(最適)의 답을 구하는 경제원리를 무시하고,정부.국회는 물론 이제는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허망한 청사진 내세우기 경합을 벌이듯 해 국민이 이에 현혹되는 경향이 여전하다.더구나 센세이셔널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이른바전문가들이 대중매체를 통해 사건의 근원이 마치 자본주의 내지 시장경제체제에 있는 듯 몰아가는 모 습도 여전하다.
직계존속을 살해한 10대의 朴,40대의 金 두 용의자를 다룬보도기사들이 그 좋은 예다.이들 용의자의 정신 밑바탕에 경제 제일주의가 있고 이를 조장한 것이 자본주의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하고 있다.이 경우「경제」보다 정확한 표현은「 탐욕(貪慾)」일 것이다.친족간의 살상행위는 근대 산업사회 이전의 농경사회나유목사회에서도 비일비재하였으며 범행 동기는 대부분 탐욕 그 자체였다. 범인에게 사건은 하나의 도박이며,범행으로 얻을 기대 이익이 클수록 저지르고 싶은 충동도 증대한다.무지렁이 백성의 가정에서보다 권문세가(權門勢家)에서 범죄가 잦고,부유한 집안일수록 사건은 엽기적이다.
경제의 원래 뜻은 근검절약하는 것이며,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이아니다. 경제원리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최선의 수단을강구하는 합리주의다.이러한 합리주의는 치밀한 사전계획을 전제로하며,여러가지 선택적 수단.방법과 예상되는 결과들과의 연관관계를 철저하게 따지고 드는 정신을 의미한다.
경제적 합리주의에 따르면 수지맞는 범죄행위는 드물다.살인사건은 더욱 그러하다.
우리나라 국정운영 주변에서도 유사한 의식 혼란의 예를 찾아볼수 있다.정치판이 워낙 내실없는 말잔치판이라고 하지만 공허한 구호들이 난무하고 있다.최근 국민생활의 질을 세계화하겠다는 선진복지사회의 비전은 화려하지만 그 내실의 공허함 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아무리 찬란한 비전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실현할 수있는 경제적 재원이 없다면 꿈은 꿈으로 남는다.선진복지사회는 땀과 눈물어린 국민 경제력이 상당한 정도로 축적돼야 비로소 가능하다.사회 간접자본 건설,첨단 과 학기술 육성,농업부문 지원,국방의 건실화등 하고 많은 국가 중대과제들과 동시적으로 선진복지사회 건설을 감당할 재원이 과연 확보돼 있는가.
6월에 치러질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내년 봄으로 예정된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바야흐로 정계는 정치인들의 이합집산(離合集散),눈치보며 우왕좌왕할 정치지망생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이들은 모두 제 나름대로 유권자에게 솔깃한 선거공약사업을들고 나올 것이다.특히 지역단위 개발사업의 공약들이 더욱 다채로울 것이다.국민의 기억력이 짧다는 사실이 더욱 이러한 경향을부채질할 것이다.
이 모든 민주주의 잔치들은 경제력의 토대위에서 가능하다.앞으로 우리는 중앙및 지방 정부와 의회에서 찬란한 청사진 내세우기를 서로 경쟁하기보다 철저히 경제 제일주의를 지향해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경제력의 축적이 충실해야 비로소 복지 사회도 꽃피고 지역개발사업도 이룩될 수 있으며 국제개방의 바람도 이겨낼 수 있다.
***현실 기반둔 꿈꿔야 애써 노력하지만 꿈이 없는 국민에게는 앞날이 없다.노력없이 꿈만 꾸는 국민은 암담한 내일은 물론오늘까지 허망하다.우리사회는 지난 30여년간 각계 각층의 국민이 노력해 이룩한 경제성장 덕분에 이제 선진국에로의 발돋움을 설계할 수 있는듯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확실한 첫 걸음은 우선 꿈에서 깨어나 냉엄한 현실에 비춰 꿈을 다듬는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西江大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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