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툼한 손바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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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03면

바람이 삭삭 불거나 수제비 같은 눈이 내릴 때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무릎이 시릴 때는 꼭 도가니탕을 드세요. 영 먹기 싫으면 내 얼굴을 떠올리면서 약 먹는다 치고 한 그릇 뚝딱 비우세요. 나중에 제 덕 봤다 할걸요?”

이 대화의 주인공은 음식 칼럼니스트 김순경(68) 선생입니다. 나이 들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골다공증에 걸릴 위험이 많은 기자 직종에 있는 사람은 무릎도가니를 고아 푹 끓인 도가니탕을 날이 차질 때 자주 먹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분 논지였습니다. 뼈를 보하라는 말씀이셨지요.

김 선생은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기 위해 하루에 5끼쯤 먹습니다. 한국의 음식 명가를 찾아 꼭 당신 입으로 그 진국을 확인하려는 마음 때문이지요. 그가 사무실에 붙인 ‘길과 맛’이란 제목은 바로 그가 살아온 행로를 가리킵니다. 길 따라 차를 달리며 맛 찾아 방방곡곡을 누비는 하루하루가 중노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음식점에 들어가 가장 중요하게 따지는 대목이 주인이 자리를 지키느냐 하는 점이라네요. 주인이 없는 집 음식은 열의 아홉은 엉터리라는 거지요. 그 다음엔 주방장 손을 본답니다. 굵고 두툼하고 따듯하고 부드러운 손을 가진 이면 음식 솜씨는 볼 것도 없답니다. 훌륭한 요리사는 손을 정성껏 가꾼답니다. 그러면서 그가 들려준 얘기 한 자락은 이랬습니다.

“절에 가면 본존 불상을 모신 대웅전이 있지요. 대부분 불상이 두툼한 손에 퉁퉁한 몸피를 하고 있습니다. 수련이 깊으면 손바닥이 절로 통통해집니다. 이를 장심(掌心)이 열린다고 하지요. 그 모습이 경배의 대상일까요? 아니죠. 요즘 말로 하면 그 이미지를 보고 배우라는 거지요. 좋은 음식을 만드는 숙수는 큰 절의 불상 같은 외양을 합니다.”

김순경 선생이 쓴 『이 맛을 대대로 전하게 하라』를 보니 이런 옛말이 떠오릅니다. “훌륭한 조리사는 행복을 나누어 주는 마법사와 같다.” 호남 반갓집 상차림의 명맥을 다져온 순창 고추장장아찌의 달인 이기남 할머니의 손가락 마디마디에는 밤알 같은 옹이가 맺혀 있다네요. 그 손이 닿은 것마다 모두 명품 진미가 아닌 것이 없다니, 문득 제 손을 내려다보게 됩니다.

지금 손바닥을 한번 올려 보세요. 어떠십니까. 한 손으로 다른 쪽 손을 만져 보세요. 너무 차지는 않으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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