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급 멋쟁이’가 더 많아져야 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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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호 36면

“편집장님, 편집장님! 저, 지금 밀라노인데요, 지구에 이렇게 옷 잘 입는 남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완전 감동 먹었어요. 지금 디카에 열심히 담는 중이에요.” 2008 F/W 밀라노 컬렉션에 출장 다녀온 패션 기자와의 통화 내용이다. 호들갑스러운 게 패션 기자들의 기질 중 하나라는 걸 알면서도 피식 웃음부터 나왔다. 대체 뭘 보고 저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세상은 넓고 멋쟁이는 많았다. 결과물을 확인한 뒤엔 정작 내가 더 호들갑을 떨어야 했다. 더 큰 용량의 메모리 카드를 챙겨가지 않은 것에 대해 타박까지 하면서. 담당 기자의 카메라에는 30대 이상 남자가 클래식과 캐주얼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에 가까운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중 몇 가지 사례에 대한 기자의 한 옥타브 높은 브리핑들. “1번 남자는 일본 남성 패션지 『오션스』의 편집장인데 더블 브레스티드 수트가 너무 인상적이에요. 요즘 한국 남자들, 더블 수트 안 입잖아요. 수트 버튼 숫자조차 유행을 타니까. 더블 수트는 클래식하기도 하지만 몸을 감싸는 피팅감이 좋고 긴장감 있는 자세를 유지시킨다는 이유로 옷 잘 입는다는 사람들의 선호 아이템 중 하나예요.” “한국 남자들, 체크와 컬러에 대한 두려움이 꽤 크잖아요. 2번 남자의 스포츠 재킷 같기도 하고 코트 같기도 한 레드 체크 재킷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할 영감을 주는 아이템이에요. 슬쩍 보면 허클베리 핀처럼 허술하게 입은 듯싶지만, 자신의 체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제대로 멋을 낸 개성적인 스타일링의 경지를 보여주는 사례예요.” “3번 남자의 포인트는 포켓 스퀘어와 타이. 어떤 로고도 없는 깔끔한 타이는 브랜드 로고로 가득한 실크 타이를 색깔별로 갖춘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한국 남자들이 생각해볼 대목이에요. 멋있는 수트 차림은 꼭 돈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지요.”
멀미가 날 정도의 브리핑을 왜 이렇게 꼼꼼하게 옮겨 놓느냐고? 당연히 당신의 시청각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천성이 게으른 사람에겐 멋쟁이가 될 유전자가 없다. 시각 교재는 그런 남자에게 제안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학습 교재다. 여기에 언급된 일급 멋쟁이들이 아닌 중간급 멋쟁이의 분포가 더 넓어져야 한다는 게 내 소신이지만, 이러거나 저러거나 멋쟁이가 되기 위한 시작은 똑같다. 권하건대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글쓴이 문일완씨는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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