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재에 집착한 大法院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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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이 4일 발표한 법조개혁안은 기존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면서 변호사자격자의 숫자를 점진적으로 늘려나가자는 보수적인 내용이다.대법원의 보수적인 개혁안의 이론적 근거가 되고 있는 것은현재의 추세와 상황,그리고 현실여건이다.
대법원의 그러한 접근자세와 인식에도 일면적 타당성은 있다.어떠한 이상(理想)도 현실에 대한 고려없이는 장밋빛 환상으로 끝나게 마련이다.또 현실의 고려없는 이상추구는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기는커녕 부작용만 크게 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런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대법원의 개혁안은 지나치게 현재의 상황과 여건에 집착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대법원이 직역(職域)이기주의나 기득권에 집착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난이 되겠으나 당장의 여건에 집착하여 개혁 에 소극적인느낌을 주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대법원은 「5년제 법대」를 제안했다.수업연한을 1년 연장하는것으로 교양교육이나 실무교육이 얼마나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
또 대법원안은 이 5년제 법대졸업자에게만 사법시험 응시자격을 주고 있는데 이럴 경우 법대입시의 지나친 과열현 상이 더욱 더심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앞으로 요구되는 다양한 전문분야 법조인의 양성은 또 어떻게 되는가.3학년때 일부를 편입시키는 것으로 과연 충분할 것인가.
적정인원의 산정(算定)에 있어서도 대법원안은 주로 이제까지의사건증가율을 근거로 삼았기 때문에 이런저런 사정으로 억제되고 잠재돼온 법률수요를 거의 감안하지 못하고 있다.그러나 지금 국민의 법조계에 대한 불만과 요구의 핵심은 바로 이 억제되고 잠재돼온 법률수요를 풀어달라는 것이 아닌가.비송무(非訟務)분야의수요를 15%로 추정한 것도 지나치게 적게 잡았다고 생각한다.
당장의 수요는 그 정도인지 모르나 앞으로는 날로 늘어날 것이며,또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측 면도 잊어서는 안된다.
다만 대법원의 제안중 경청해야할 대목은 직역별 대책이다.전관예우를 막기 위한 회피제도의 신설,모든 구속피고인에 대한 국선변호인 선임,형사사건에 대한 법률구조 실시,변호사의 법무 법인화,공공변호인제 도입,변호사 직역확대,변호사보수의 표준화등은 어떠한 법조개혁안을 택하든 함께 실현돼야 할 대책이라고 본다.
또한 정부도 현실여건의 개선책을 함께 제시함이 없이 그저 변호사수만 대폭 늘리는 방향의 일면적 개혁을 추진해선 안될 것이다.이상의 추구와 현실여건의 개선은 반드시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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