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 우즈베크 대표로 돌아온 유·선·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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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피겨여왕’ 김연아(군포수리고)가 부상으로 빠진 4대륙 피겨스케이팅선수권대회에서 연일 한국 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선수가 있다.

우즈베키스탄 대표로 아이스댄싱에 출전한 유선혜(24)다. 그는 대한민국 여권을 갖고 있는 분명한 한국 선수다. 그렇지만 ‘은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12년 만에 고국 무대에 섰다.

유선혜가 스케이트를 시작한 것은 1990년, 김연아가 태어난 해다. 대부분의 소녀들이 그렇듯 그의 꿈은 세계적인 여자싱글 선수였다. 꿈을 위해 서울 서초동 원명초등학교 5학년을 마친 96년 초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스핀·점프 등 각종 기술을 익히며 꿈을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중학교 졸업 무렵부터 갑자기 키가 자라기 시작했다. 1년에 20㎝ 가까이 커 1m68㎝가 되자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큰 키로 인해 고난도 기술 구사는 더욱 힘들어졌다. 스케이트를 포기할까 고민하던 상황에서 아이스댄싱을 알게 됐다. 다니던 링크에 영국 출신의 유명 아이스댄싱 코치가 부임한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스텝 등 스케이팅 기술을 늘리겠다는 생각에서 아이스댄싱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유선혜는 자연스레 아이스댄싱 선수가 됐다. 점프나 회전 기술이 절대적인 싱글 종목과 달리 댄싱 종목은 파트너의 리프트(들어올리기)나 스텝 등이 강조됐기 때문에 적응이 쉬웠다.

2003년 고교 졸업을 앞둔 그는 아이스댄싱 국가대표를 꿈꾸며 귀국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그와 호흡을 맞춰 줄 남자 선수가 없었다. 그는 선수층이 두터운 러시아로 파트너를 찾아 나섰고 괜찮은 선수를 만나긴 했다.

그러나 다른 걸림돌이 나타났다. 대한체육회 규정상 외국선수가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서는 한국으로 귀화하거나 2년 이상 국내에 거주해야만 가능했다. 귀화는 어림없는 조건이었고, 국내에 아이스댄싱 지도자가 없는 상황에서 ‘2년 이상 국내 거주’ 역시 맞출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는 미국으로 다시 돌아갔다. 좌절은 했지만 포기는 하지 않았다.

지난해 유선혜의 코치가 그에게 우즈베키스탄 출신 라밀 사르쿨로프(27)를 소개했다. 사르쿨로프 역시 미국으로 건너와 파트너를 찾고 있던 참이었다. 사르쿨로프는 2001~2002시즌 자국 챔피언에 오른 우즈베키스탄 아이스댄싱의 간판 선수다. 우즈베키스탄 쪽에서 유선혜에게 “사르쿨로프의 파트너가 되어 국가대표로 뛰어 달라”는 제의를 해왔다. 우즈베키스탄은 한국과 달리 귀화 등의 조건이 없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유선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2011년 알마티 겨울 아시안게임이다. 우즈베키스탄에 이웃해 있는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게 그의 새로운 꿈이 됐다.

유선혜-사르쿨로프 조는 13일 고양 어울림누리 빙상장에서 아이스댄싱 컴펄서리댄스에서는 10위에, 14일 오리지널댄스에서는 최하위(13위)에 그쳤다. 호흡을 맞춘 지 불과 7개월밖에 안 된 점을 감안하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그래도 유선혜의 표정은 밝다. 새로운 꿈을 향해 다시 은반에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장혜수 기자

◇아이스댄싱=남녀가 음악에 맞춰 스텝워크, 리프트 등으로 예술성을 겨루는 빙판 위의 사교댄스. 점프가 없다는 점이 다른 피겨 종목과 다르다. 컴펄서리댄스, 오리지널댄스, 프리댄스 등 세 차례 경기의 합계 점수로 순위를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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