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면분할 ‘착시 주의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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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주주총회 시즌이 가까워 오자 액면분할을 공시한 상장회사가 늘고 있다. 14일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서만 9개 사가 액면분할을 하겠다고 공시했다. 액면분할은 예컨대 주당 5000원짜리 주식 한 주를 500원짜리 주식 10주로 나누는 걸 말한다. 주식 수는 늘어나지만 시가총액에는 변화가 없다. 물론 기업 실적에도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상장회사가 액면분할을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통 물량이 너무 적어 거래가 잘 이뤄지지 않을 때다. 액면분할을 공시한 회사의 거래량을 보면 하루 1만 주도 안 되는 종목이 많은 건 이 때문이다. 액면을 쪼개 놓으면 그만큼 유통 물량이 늘어나 거래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다. 주가를 싸 보이게 하려는 것도 액면분할의 중요한 목적의 하나다.

예컨대 주당 100만원인 주식을 10분의 1로 쪼개 놓으면 주가가 싼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둘 다 기업의 실적과는 상관이 없어 주가를 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될 때가 많다. 액면분할 공시가 주총 시즌에 집중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주가를 띄우라는 주주의 압력을 의식해서다.

액면분할의 효과는 엇갈린다. 기업 내용은 좋은데 유통 물량이 적어 거래가 잘 안 됐던 종목에는 호재로 작용할 때가 많다. 유통 물량이 많아지면 기관투자가의 관심을 끌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는 회사가 일시적으로 주가를 싸 보이게 하기 위해 액면분할을 하는 경우 오히려 악재가 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삼성증권 장정훈 애널리스트는 “액면분할의 목적은 유통 물량을 증가시켜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 있을 뿐 기업 실적과는 아무 관련이 없기 때문에 실적을 따져보지 않은 채 싸다고 무턱대고 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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