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제2부 불타는 땅 꽃잎은 떠 물 위에 흐르고(15) 『고향?하나코는 고향이 어딘데?』 『바다 건너,조선.』 야스코가 콧소리를 내며 웃었다.
『조선 어디? 북쪽이야,남쪽이야?』 『가운데.』 그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야스코는 더 말이 없었다.팔을 턱밑에 괴고 몸을엎드린 그녀는 손가락으로 다다미 위에 무언가 글씨를 긁적거리고있었다.그녀의 숨소리를 들으며 화순은 문득 자신이 한 말을 자신에게 되물었다.
나아야 한다고.그래서 고향에 돌아가야 한다고.네 고향이 어딘데? 거기 누가 있는데?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화순은 고향집과 술주정으로 날을 보내던 아버지와 그리고 매맞는 것이 일이던 어머니를 떠올렸다.동생들도 이제는 다 큰 어른이 되었으리라는 생각도 했다.만주든 남방이든 어디로 끌려갔겠지.그도 아니면 여기 징용공들처럼 어딘가에서 까마귀처럼 탄가루를 뒤집어 쓴 채 노역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때 불쑥 야스코가 물었다.
『조선남자는 여자를 때린다면서?』 『누가 그래?』 『나 한 사람 알아.
조선에서 인부들 모아다가 탄광에서 일하게 하고,그런 일 하던남잔데 요즘은 통보이지를 않네.』 『그 남자가 그랬어? 조선남자는 여자를 때린다고?』 야스코가 소리없이 웃었다.
『그 남자는 자기 밖에 몰라.뭐든지 자기 좋은대로야.돈 쓰는것도 그래.있으면 쓰고,없어도 언제나 있는 척만 하고.』 『그런 남자도 있겠지.조선남자라고 다 그럴까.』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야스코가 물었다.
『참,너 누구랑 정을 나눴다면서? 나도 다 들어서 알고 있어.도망친 그 조선남자,맞지?』 화순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부럽구나,사랑에 빠지기도 하고.이런 전시에.』 『전쟁은 일본이 하는 거지 조선이 하는 게 아냐.』 『넌 요즘 안 하던말을 종종 하더구나.조선이 어떻고 일본이 어떻고,너 답지 않아.전에 너는 이렇지 않았어.일은 열심히 안 하고 술만 마신다고네가 주인에게 야단을 맞을 때도 나는 그런 네가 좋았는데,그 여자는 지금의 너는 아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