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정부 ‘신용 강등’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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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가 미국 주(州) 정부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췄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3일 보도했다.

등급 전망이 부정적으로 바뀌면 통상 2~3개월 후에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디스는 “주택 시장이 침체하고 경기가 위축되면서 주 정부의 세수가 급격하게 감소할 가능성이 있고, 교육과 복지 분야의 지출도 줄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올 회계연도에 뉴욕·뉴저지·캘리포니아주 등 절반 정도의 주 정부가 재정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주는 올해 세수 전망치를 3억4000만 달러 줄였고, 캘리포니아주는 140억 달러에 달하는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지출을 10% 줄이기로 했다.

◇신용등급 강등 위기의 파장=미국 주 정부의 신용등급 강등 위기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에서 시작된 신용 위기가 미국 경제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금융시장에선 주택 가격이 떨어지면서 담보 대출이 부실화돼 금융회사와 채권보증사(모노라인)에 이어 AIG 등 보험사까지 타격을 입었다.

실물 경제에선 대출 원리금을 갚지 못한 소비자들이 집을 잃으면서 소비 위축→기업 실적 부진→고용 악화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서브프라임에서 시작된 위기는 상대적으로 튼튼했던 우량 주택담보 대출과 카드론, 자동차 할부의 연체율도 끌어올리고 있다. 금융과 실물 모두 위축되자 세금을 걷어 살림을 해야 하는 주 정부까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주 정부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이들이 발행한 채권의 등급이 하락하면서 가뜩이나 불안한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 채권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채권 값이 하락해 이를 보유한 금융회사와 투자자가 그만큼 평가 손실을 보기 때문이다. 또 이들 채권을 담보로 만들어진 각종 파생금융상품에도 영향을 준다.

미국 주 정부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더라도 당장 국가신용등급 자체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는 최악의 경우 달러를 찍어 부도를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국가 부도 위험은 없는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주 정부의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미국 전체의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재경경제부 관계자는 “아직 주 정부의 신용등급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미국 금융시장이 워낙 불안해 새로운 충격에 취약한 게 사실”이라며 “국내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압류 유예 등 대책 부심=미국 정부는 서브프라임 위기가 확산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주택 압류를 30일 동안 미루는 ‘프로젝트 라이프라인’ 프로그램을 추진키로 했다.

알폰소 잭슨 주택도시개발부 장관은 “이번 조치는 주택 소유자와 금융회사들이 상환 금리를 조정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출금을 90일 이상 갚지 못한 모든 주택 담보 대출자에게 적용된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이자 부담이 많은 서브프라임 대출자에 대해서만 압류 유예를 했지만 이번엔 모든 대출자로 확대한 것이다.

한편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모노라인이 보증한 지방정부 채권을 재보증할 수 있다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모노라인은 이를 거부했다. 가장 안정적인 수입을 주는 지방정부 채권에 대해서만 재보증을 한다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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