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강요배 개인전 ‘스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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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붓 대신 사용한 구긴 신문지가 캔버스를 스치는 소리, 바람이 물 위를 스치는 느낌, 그림 그릴 때 뇌리를 스치는 상념, 이 그림을 보러 오는 너와 나의 스쳐가는 인연…. 전시는 바로 이 모든 것이다.

강요배(56)씨의 개인전 ‘스침’(사진)에 풍경화 30여 점이 걸렸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강씨가 찰지게 그린 제주 풍경들이다. 그의 붓은 ‘자연산’이다. 돌하르방을 그릴 때는 제주 현무암에, 나무를 그릴 때는 솔가지에 물감을 찍어 그린다. “자연스러우려고 자연으로 그렸다. 그림의 소재가 붓이 되기도 하는 게 마음에 든다”고 그는 말한다. 팽나무 사이로 보이는 흐린 날의 해, ‘담일(淡日·사진)’은 붓으로도, 갖가지 구긴 종이로도 그렸다. 풍경화에는 사람 한 명 안 보이고, 작가는 시종일관 ‘편안함’이라는 단어를 강조한다. 그는 1980년대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활동하며 ‘4·3 항쟁’을 화면에 되살렸고, 지난해부터 민족미술인협회장을 맡고 있다.

“지금도 내 작업은 민중미술이다. 민중이란 서민과 같은 넓은 의미로 쓰여야 한다. 싸우려고 민중미술을 하나, 편안하려고 하는 거지. 중요한 건 창의력과 솔직함 아닌가.”

억울하게 먼저 간 이들을 기억하는 ‘담일’에 이어 억압에 서슬퍼렇게 일어나는 ‘뒈싸진 바당’(‘뒤집힌 바다’라는 의미의 제주 방언), 무더운 여름날의 낮잠처럼 풍족한 ‘입추’…. 제주 풍경에서 사연의 흔적을 찾든, 고운 색채의 반추상화에서 서정적 정취를 만끽하든 스쳐가 볼 만한 전시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에서 26일까지 열린다. 02-720-1524.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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