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 신화요? 스포츠엔 우연이 없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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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상윤 감독이 SK 사령탑을 맡고 있던 2005년,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에 이 감독이 몸짓을 크게 하며 기뻐하고 있다. [중앙포토]

좋은 성적을 내는 지도자에겐 반드시 그 만한 이유가 있다. 감독의 전략을 십분 소화할 능력 있는 선수도 필요하지만 선수들을 장악할 수 있는 감독의 리더십 역시 중요 덕목이다.

여자농구의 이상윤(46) 감독은 그런 리더십이 돋보이는 사람이다. 지난해 3월 그가 부임하기 전 금호생명은 꼴찌 팀의 대명사였다. 2000년 창단 후 7시즌 연속 꼴찌였다(당시 여자농구는 한 해에 여름, 겨울 두 번의 리그가 있었다).

2004년엔 타 구단보다 외국인 선수 한 명을 더 쓸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그해 겨울리그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했지만 선수들은 항상 지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 그가 부임 후 처음 맞는 이번 시즌에서 금호생명의 돌풍을 주도하고 있다. 특별히 스타급 선수를 보강한 것도 아닌데 12일 현재 17승13패로 3위를 확정지으며 팀을 플레이오프에 진출시켰다.

이 감독은 부임 후 선수들과의 동고동락을 제1모토로 삼았다.

감독이 선수들과 하나가 돼야 팀워크도 다져지고 선수들도 따라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고동락이야말로 선수단 장악의 키워드인 셈이다. 이같이 결심한 이면에는 스타 군단 SK 남자농구단에서의 실패가 교훈이 됐다. 전희철·조상현같이 당시엔 기라성 같은 선수를 데리고 있었고, 구단의 지원도 풍부했지만 그는 2004년 7위, 2005년 8위에 그쳤다. 그리고 지휘봉을 빼앗겼다. 선수단 장악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이 감독이 금호생명으로 처음 왔을 때 고참 선수들의 영향력이 감독보다 막강했다. 그래서 이 감독은 ‘선수들과 하나가 되겠다’고 선언했고, 아울러 ‘고참도 훈련에 예외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고참 선수들이 반발했다. 주장인 홍모 선수는 ‘나의 자유를 침해하지 말라’며 대들기까지 했다.

이 감독은 전력 손실을 감수하면서 끝내 설득에 응하지 않은 그 선수를 퇴출시켰다. 그러자 홍 선수는 ‘구단 측의 일방적인 조치로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제기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팀은 똘똘 뭉쳤다. 홍 선수가 팀을 떠나자 나머지 고참 선수 2명도 이 감독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과했다. 팀워크가 단단해지기 시작했다. 후배들에게서 신망이 두터운 신정자가 새로 주장을 맡으면서 팀에 활력이 생겼다.

이 감독은 사실 무명 돌풍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성균관대를 나와 삼성전자에서 선수 생활을 잠깐 했지만 주전보다는 벤치 쪽이 가까웠다. 1988년 은퇴한 뒤에는 냉장고 외판사원, 구단 프런트 등을 거치면서 ‘눈물 젖은 빵’도 먹어 보았다. 그러다 농구계 선배의 소개로 해체 직전의 코리아텐더팀 코치로 들어갔고 2003년 감독이 경질되면서 감독대행으로 팀을 플레이오프 4강에 진출시켰다. 이상윤이라는 이름 석 자가 알려지는 계기였다. 그 공로로 이상윤은 다음 시즌 부자 구단인 SK 감독으로 스카우트 됐다.

이상윤 감독은 “스포츠에는 우연이 없다. 성적이 좋은 팀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며 “끈끈한 차돌 팀워크로 플레이오프에서 강팀의 면모를 보이겠다”고 다짐했다. 

장주영 기자

 ◇이상윤은…

▶출생: 1962년 2월 15일

▶별명: ‘꼴찌신화’

▶신체조건: 1m84cm, 87㎏

▶가장 싫어하는 말: “이상윤은 꼴찌팀 성적을 어느 정도 올려도 우승은 못 시킨다.

▶출신교: 배재고-성균관대-삼성전자

▶경력: 삼성전자 영업본부, 삼성썬더스 사무국 지원과장, 코리아텐더 코치, 코리아텐더 감독대행, SK나이츠 감독, 엑스포츠 해설위원, 금호생명 감독(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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