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유학 대안으로 뜨는 국내 '외국인학교' - 유학보다 비용 저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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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교육이 가장 큰 고민이지요.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아이가 창의적이고 자유롭게 공부하기를 바래요.” 초등학교 5학년 딸을 둔 주부 한모(40·서울 개포동)씨는 지난해 11월 필리핀 은퇴이민 비자를 받았다. 국내 외국인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기 위해 한씨가 선택한 고육책이다. 필리핀 은퇴이민 비자의 경우 자녀까지 영주권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지원자격 얻기 위해 해외 영주권 취득 붐
모든 수업 토론식…방과 후 활동 다양
1년 학비 2000만~3000만원 선

외국인학교 입학을 위한 영주권 획득 바람
최근 글로벌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외국인학교 입학을 위한 해외 영주권 취득이 붐을 이루고 있다. 유학보다 비용이 저렴하고 국내에서 선진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분당에 사는 정모(43·자영업)씨는 캐나다 영주권 취득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 중이다. 중학교 2학년 아들의 외국인학교 지원자격을 얻기 위해서다. 그는 “조기유학에서 돌아온 이후 아들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며 “전문 변호사에게 단기간에 영주권을 취득해 주는 조건으로 상당한 돈을 지불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외국인학교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네이버나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는 질문이 쏟아지고 있다. 각 학교의 특징과 입학자격에 대한 문의가 대부분이지만 영주권이나 시민권을 단기간에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얘기도 눈에 띈다. 이런 열기를 반영하듯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영주권 취득을 대행해 주는 전문컨설팅 회사도 등장했다.

그러나 영주권만 있다고 모두 외국인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기업의 임원 임모(43·분당)씨는 한국말이 서툰 딸아이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언어 장벽 때문에 일반 학교에는 보낼 수 없어 외국인학교에 지원했다”며 “지난해 청심국제중에 응시했다 탈락한 후 분당에 있는 외국인학교에 원서를 넣었지만 아직 자리가 나지 않아 기다리고 있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외국인학교 왜 뜨나
외국인학교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조기유학’열풍 이유와 흡사하다. 박진용 페르마에듀 해외사업본부장은 “국내에서도 선진국과 동일한 시스템으로 자녀를 교육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장기간의 유학으로 인해 국내 복귀 후 수업 부적응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또 “대부분의 외국인학교는 해외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지만 국내 대학의 글로벌 전형도 크게 늘어 입학 문이 넓어진 것도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현재 국내에서 운영 중인 외국인학교는 40여 개. 특히 서울외국인학교(SFS), 한국외국인학교(KIS), 서울국제학교(SIS) 등은 최소 1년은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외국인학교의 한 반의 정원은 20~25명 정도. 모든 수업은 토론식으로 진행되며 방과후 활동도 다양하다. 학비는 일년에 2000만~3000만원 선으로 다소 비싸지만 유럽이나 미주지역 유학시 드는 4000만~6000만원에 비하면 저렴하다.

일부 학교를 빼고, 보통 영주권을 갖고 있거나 5년 이상 해외거주 경험이 있으면 입학이 가능하다. 박 본부장은 “원정출산을 통한 시민권 획득이나 투자이민을 통한 영주권 취득이 늘면서 입학자격을 갖춘 학생 역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멀지않아 외국인학교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요 외국인학교별 입학 조건
최근 개교한 용산국제학교(YISS)는 영주권이 없더라도 5년 이상 외국에서 거주한 학생이라면 지원할 수 있다. 서울외국인학교(SFS)는 학생은 물론 부모 중 한 명이라도 시민권이 있어야 한다. 서울국제학교(SIS)는 학생이 시민권 또는 영주권을 갖고 있으면 입학이 가능하다.
한국 외국인학교(KIS)는 부모 중 한 명이 시민권을 갖고 있거나, 5년 이상 해외거주한 경우 지원할 수 있다. 특히 송도국제학교는 외국에 한번도 거주한 적이 없는 내국인도 지원할 수 있다. 개교 후 5년까지 정원의 30% 정도로 내국인 입학을 확대할 방침이다. 대체적으로 외국인학교는 명문일수록 입학요건이 까다롭다.
 
외국인학교 바람이 불면서 파생상품이 늘어나고 있다.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영주권 취득을 주선하는 전문 컨설팅업체가 생겨났다. 미국이나 선진국은 영주권 취득조건이 복잡하고 기간 또한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동남아는 환율이 낮아 투자 부담이 적고 이민절차나 조건이 비교적 수월하다.

교육의 메카인 대치·도곡동 일대에는 외국인학교 재학생을 위한 전문학원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주로 소규모 수업으로 진행되며, 학교 수업 준비·내신관리·시험준비 과정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외국인학교 입학이 불가능한 학생들은 대안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전주 국제영재아카데미(Global Prodigy Academy)는 60여명의 학생들이 외국대학 진학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다.

국내 명문대 입시를 위한 특목고 열풍처럼 외국인학교가 해외명문대 진학 준비생들을 위한 또 하나의 장이 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라일찬 기자 ideae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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