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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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편의 승낙으로 연옥의 혼사는 급진전됐다.
한약방 노마님의 원대로 작약꽃 피는 오월에 약초원 뜰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
장소를 약초원으로 정한 것은 연옥이었다.
강당같은 예식장서 겨우 한시간의 말미를 받고 쫓기듯 치러야하는 규격품 결혼식은 질색이라고 늘 말해온 연옥이니,약초원을 식장으로 정한 것은 그럴싸한 아이디어였으나 그녀에겐 나름의 계산이 있었다.결혼하면 약초원에서 노마님을 모시고 살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빈틈없는 아이라 새삼 혀를 내둘렀다.
한의원 원장은 장남이다.지금은 딴 살림을 내고 산다 치더라도언젠가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할 처지다.기왕 시집살이하려면노마님 밑에서 하는 것이 편하다.노마님은 문중 최고의 권력자였고 연옥의 절대지지자였다.동시에 길례를 끔찍이 아끼고 있으므로친정어머니 드나들기도 편할 것이었다.게다가 약초원은 어차피 한의원 원장이 이어받을 터전이다.자신의 터전에서 일찌감치 터잡고사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지 않은가….
연옥의 계산을 길례는 속속들이 아프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자기 속으로 낳은 아이지만 길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만큼 야무졌다.그것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다.냉랭하게 살아온 길례 내외가 빚어낸 소산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결론을 향해 서둘러 굴러가고 있는 느낌이었다.
길례 자신의 문제도 어떻든 전환점에 서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정읍사」를 캐는 작업도 이제 마지막 대목에 접어들고 있다.
그림도 대충 윤곽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다.
『조각보 잘 만드는 따님이 시집가게 됐단 말씀이지요? 아리영씨가 시동생 색시감으로 눈독들이고 있었는데 서운해 하겠네요.』서여사는 연옥의 혼사를 반기며 덧붙였다.
아리영은 정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그리고 아리영 아버지는…한시도 잊어본 적 없는 그 모습이 가슴을 저미며 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까 책 표지는 우리 전통보자기를 도안(圖案)한 그림으로 하는 것이 좋겠어요.』 서여사가 제안했다.
「보자기」는 바로 여자의 성을 상징하는 것이니 여성의 사랑 노래인 「정읍사」의 책표지로 안성맞춤이라는 것이다.
『보자기는 원래 「보기」라 썼지요.이「」는 「자」와 「조」의중간소리지요.아주 옛날 보자기는 「」「보도」 「보도기」라 불렸는데, 이것이 「보기」 「보자기」로 불리게 됐다는 거예요.일본옛말로 여자의 성기를 「호토」라 했지요.우리 옛말 「보도」에서생긴 말이에요.보자기처럼 싸안는 것이 여자들의 성기가 아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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