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교수가 殺父하는 세상-恨歎만있고 處方이 없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정녕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너는 뭘 생각하며 뭘 위해 그렇게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으며,나는 또 왜 이토록 초조.
불안해 하면서 앞만 응시해야 하는가.
인류의 장래는 정녕 불확실성의 안개 속에 잠겨 있는가.어느 누구도 헤아릴 길이 없는가.
우주의 신비가 그렇듯 우리의「오늘」도 불가사의로 가득 채워져있고,「내일」도 또한 그렇단 말인가.
과학.기계문명.산업사회.자본주의.경제성장,그런 것들이 어쩌다이렇게도 우리의 마음을 뒤집어 놓았는가.미치게 하는가.왜 우리를 서로 싸우게 하고 미워하게 하고 서로 죽이게 하는가.편리하고 쾌적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고 오래 살게 한다 더니 그건 달콤한 사탕발림에 불과했는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믿을 수 있다면 조선왕조가 건국된지36년(세종10년.1428년)만에 첫「아비죽인 사건」(弑父事件)이 일어났다.진주에 사는 김화(金禾)라는 자가 아버지를 시해한 것이다.그런데 과학문명이 발달해 인간이 달에 올라가 걸어다니고 경제가 성장해 쌀밥에 고깃국이 입에 신물이 나 외국의 맛난 것만 찾는 이 시대에 하루가 멀다 하고 부모를 죽이고 두들겨 패는 사건이 줄을 잇는다.재작년에는 36명의 부모가 자식의손에 맞아 죽었고 작년에는 41명 이 시해당했으며 올해는 아무래도 초과달성이 될 모양이다.10대 철부지나 가슴 속에 한이 맺힌 자가 그렇게도 많은가.생각하지 말자.이제는 40대 대학교수도 아버지의 목에 칼을 꽂았다.낳아주고 길러주고 공부시켜주고그토록 잘 살아가게끔 애써주신 아버지.어머니를 자식은 왜 죽임으로 보복하는가.더군다나 많은 돈 들여 미국 유학까지 시켜 대학교수로 만들어줬는데 무엇이 또 부족하고,무엇이 또 불만스러워아버지의 목숨을 뺏아야 했는가.돈 때문이라고 한다.돈.
산업화와 함께 물질만능주의.한탕주의가 횡행한다지만 이건 심해도 너무 심하다.
돈을 노린 모든 범죄는 단죄되고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 범죄의 화살이 자신을 낳아 길러준 부모에게까지 미친다면 무슨 낙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도덕성이 땅에 떨어졌다.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삼천리 방방곡곡의 모든 뜻있는 사람들이 총궐기해「도덕성 회복운동」이라도 펴 야 할 판이다. 김화사건 때의 처방은 이러했다.「효행록(孝行錄)등 책을 많이 간행해 널리 보급시켜 국민 모두가 읽고 외우게 해 저절로도덕성에 젖게 하도록 한다」.
6백년 후인 오늘의 전문가들도 진단하고 처방하기를「가치관을 정립시켜줘야 한다」는 것이다.고금이 마찬가지다.그런데 처방의 실천에는 딴판이다.6백년 전에는 정부당국이 당장 책을 만들어 전국에 배포하고 대대적인 교육운동을 이끌었다.한자 (漢字)는 어렵다 해서 그림을 그려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하고,더욱 쉽게 익힐 수 있는「한글」창제에도 착수했다.
6백년후 과학시대에 사는 오늘은 어떠한가.분노의 팔뚝질,한탄의 소리가 없는 바 아니지만 그저 허공을 맴돌뿐 구체적인 처방의 실천에 나섰다는 징조는 없다.학교 교육의 ABC에 시시콜콜간섭하는 행정당국도 시원한 조치 하나 내렸다는 소식이 없다.국정을 맡고 있는 총책임자는 연일 세계화만 역설하신다.세계화,어쩌겠다는 걸까.대문 활짝 열어젖히고 세계를 향해 마구 달려가기전에 먼저 안방 단속부터 해야하고 대청마루도,뜰도 챙겨봐야 하지 않을까.내 발은 지금 어디에 닿아 있으며 어디를 향해 있는가.

<최근덕 성균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