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타자에 대한 예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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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문제의 핵심은 결혼 중개로 이윤만을 추구하는 악덕 중개업자의 난립에 있다. 결혼 중개업은 성혼 건수당 이윤이 생기는 사업이라 일단 결혼시켜 놓는 것이 중요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두 국가의 남녀를 3박4일이나 5박6일의 맞선 관광 기간 동안 결혼을 시키려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중개업체는 ‘허위 정보’를 유통하는 재주를 부린다. 중국 여성은 “한국처럼 유교적 전통이 강해 생각이 보수적”, 베트남 여성은 “지상에 마지막 남은 천사로 절대 도망가지 않음”, 몽골 여성은 “동양의 순수한 영혼을 가진 여성”이라 선전된다. 그러나 중국·베트남·몽골 모두 사회주의 교육의 영향으로 남녀평등 의식이 강하고 여성들의 교육수준도 남성보다 높고, 사회적 참여 또한 활발하다. 국가의 일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우리보다 낮다고 해서 낙후된 의식 세계를 갖고 있다고 단정하는 것이야말로 대단한 착각이다. 더욱이 이 나라들에선 남녀의 부모 모두를 똑같이 존중하며 핵가족으로 살기 때문에 ‘시집살이’란 개념이 없다. 여성들은 한국의 남편이 ‘나보다는 우리 부모와 잘 맞아야 한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맞선 과정에서도 잘못된 정보가 유통된다. 택시회사 기사가 운수회사 사장으로, 직업 없이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하는 남성이 펀드매니저로 소개된다. 마찬가지로 한국 남성들도 몇 시간 만에 배우자를 골라야 하는 맞선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어떤 경우에는 시간을 재촉하는 중개업자의 성화에 못 이겨 중개업자가 골라주는 여성을 선택한다. 결혼 당사자 모두 이 과정에서 배우자를 ‘잘’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지 못한다. 결혼이 결정된 다음 여성이 중간에 마음이 변해 결혼을 포기하면 중개업자에게 어마어마한 위약금을 물어야 한다. 한국으로 입국 후 여성이 도망가면 여성의 부모들은 중개업체에 5000달러의 벌금을 내겠다는 서약서를 쓰기도 한다.

서로에 대한 신상정보를 제대로 아는 것이 ‘삭제’된 중개업에 의한 국제결혼은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고 있다. 이미 베트남의 몇몇 지역에선 한국 남성과 결혼할 경우 결혼신고를 불허하고 있다. 몽골 민간단체들은 한국으로 결혼 이주 후 귀환한 몽골 여성들이 한국에서 당한 피해 사례를 접수하고 있다. 한국에서 가족을 이루고 한국의 시민으로 살아갈 외국 여성들을 제대로 모셔와야 하는 것은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기본 태도다. 국제 중개업 과정에서 인권 침해가 일어날 경우 이를 규제하는 국제법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국제 인신매매방지협약에 가입은 했으나 몇 년간 국회 비준을 미루고 있다.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모토를 외치던 한국 정부가 인권을 위해 전 세계와 협력할 기회를 왜 미루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영어 공교육과 같은 세계화에 대한 열망만큼 중요한 것은 내 나라의 경계 밖에 있는 사람과 평등하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세계화는 타자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현미 연세대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