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용학원 金이사장 피살사건-金이사장 어떻게 돈 모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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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형진(金衡鎭)씨는 평양출신으로 1.4후퇴때 단신으로 월남,무일푼에서 엄청난 재산을 모은 전형적 자수성가형이다.
월남 직후부터 『장차 돈을 벌거든 돈이 없어 배우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해온 金씨는 뜻대로돈을 벌고 교육사업에 뛰어들었다.
평양광성중학교(5년제)를 마친 金씨는 처음에 부산국제시장에서싼값에 원단을 구입해 이를 주로 서울 의류도매상들에게 파는 행상을 하며 밑천을 모아 동대문광장시장에서 「명문라사」라는 원단도.소매점을 차렸다.
75년까지 운영한 전국총판형태의 이 가게에서 金씨는 사업가로서 기반을 다졌고 직원 20여명을 거느린 어엿한 「사장님」으로면모를 갖췄다.이때 광장시장일대에서는 金씨가 거의 「신화적 인물」로 군림했다는 것이 당시 사업을 도왔던 사람 들의 이야기다. 金씨는 이어 71년부터 부동산을 관리하는 금용물산을 차리고종로2가 8층건물 금용빌딩에서 나오는 임대수입을 챙기는 한편 73년 종로6가에 국제규격을 갖춘 수영장을 세웠다.
그러나 전기료.수도료등에서 혜택을 받아왔던 수영장사업이 당시오일쇼크 여파로 어렵게 되자 78년 그 자리에 다시 10층짜리한덕빌딩을 지은뒤 82년 이 건물을 관리하는 해강기업을 설립했다.金씨는 한덕빌딩에 입주한 50여개 사무실로 부터 월 6천여만원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고 있고,집이 있는 신당동 덕암빌딩도5개층을 임대하고 있다.
〈金玄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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