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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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제2부 불타는 땅 비내리는 나가사키(31) 지난 일을 생각하면서도 지상은 아침의 일이 떠올라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마을에서 일본사람들이 뭐래?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거야?』 『당하기야.종로에서 뺨맞고 남산에 올라가서 침뱉는 꼴이 됐지만서도…이것들이 영 사람 취급을 안하더라니까.말을 걸어도 외면을 하고 그만이야.젠장헐.그러고 올라오다가 요시미즈한테 걸렸잖아.』 『요시미즈가 누군데?』 『감시하는 놈.경비말이야.』각반차고 가죽채찍을 들었던 사내.그의 이름이 요시미즈였나.성 하나는 생긴 거 하고는 다르게 곱군 그래.요시미즈라면 그건 맑은 물이라는 뜻 아니겠어.그나저나 윤수 이놈,빠르기는 빠르구나.어느새 그의 이름까지 알아놓고 있다니.아침에 그자와 만났을 때 얻어맞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구나 생각하는 지상에게 윤수가몸을 불쑥 내밀더니 자신의 옷깃을 뒤집으며 목덜미를 내보였다.
『이거 보라구,이거.내가 화 안나게 생겼어?』 검붉게 피멍이든 자국이 그의 목에서 어깻죽지로 길게 선을 긋고 있었다.채찍자국이 분명했다.
『누구 맘대로 나다니냐고 다짜고짜 후려갈기는 거 아니겠어.내가 제놈한테 매 맞고 살 사람이냐? 내가 누군데? 그게 사람을잘못 봐도 아주 잘못봤지.내 그 자식은 어떻게든 혼을 내고야 말테니까 두고 봐라.』 『도망이라도 치든가 못 살겠다더니?』 『갈 때 가더라도 있는 한은 내 그냥 안 놔둔다 그말이지.』 『열흘 길 하루도 안 가서 그러지 말아.그런 소리…누굴 믿겠다고 그렇게 내놓고 할 말도 아닌 거 같고.안 그렇냐? 아직은 좀 두고 봐야지.』 지상이 엉덩이를 털며 일어섰다.허리를 펴며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언제 이쪽에도 공습이 시작될 건가.햇빛은 따사롭다만… 목숨은 내논 목숨이구나 싶었다.
터널 공사는 세 단계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먼저 화약으로 발파를 해서 땅을 파내는 일이 그것이었고 두번째 작업이 거기서 나온 흙과 돌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었다.그리고 나면 버팀목으로받치고 있는 땅굴에 시멘트로 마지막 마무리를 하 게 되어 있었다. 새로 온 징용공들이 투입되는 작업은 흙과 돌을 실어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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