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선심 농정’이제는 청산하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우리 농수산업에 개방시대가 열린 것은 20년 전인 1989년 농수산물 수입자유화 조치가 이루어지면서부터다. 그 후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99년 한·칠레 FTA로 농어업 개방은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지난 10년간 우리 농정은 경쟁력을 높이기보다 어려운 영세 농어가를 보호하기 위한 분배성 선심 농정에만 초점이 맞춰져 왔다. 산업으로서의 농어업은 실종됐고, 보호를 호소하는 패배인 시각이 농정의 주류를 형성했다.  

이에 따라 농어가는 당당한 경제 주체가 아니라 사회적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취급돼 왔다. 젊은이들은 미래가 안 보이는 농수산업을 기피하고 농어업 인력은 더욱 더 고령화됐다. 정부의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농어가 간 양극화는 더욱 심화됐고, 정부 재정지원이 늘어갈수록 농어가 부채도 늘어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농어촌에는 ‘정부 돈은 공돈’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졌다. 이를 방치한 채 무차별적인 돈 나눠주기를 계속한다면 우리 농수산업은 희망이 없다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새 정부가 출범하는 2008년을 대한민국 선진화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농어업·농어촌의 선진화 없이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없다. 우리 농정도 지난 10년간의 선심 농정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농수산업·농어촌 선진화를 위한 선진 농정을 세울 때가 됐다. 민간의 창의와 시장원리를 존중하는 자율적이고 분권적인 농정 운용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농림부를 전면적으로 혁신하고, 농협과 수협을 바꿔야 한다. 지방정부의 농정 수행 능력도 강화돼야 한다.

이런 바탕이 조성돼야 우리 농수산업은 국민 건강과 환경을 지키면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작지만 강한 농수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다. 농수산업은 바이오 에너지, 신물질, 휴양레저 등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미래산업으로 육성할 가치가 있다. 농어업을 1차 산업 아닌 1·2·3차 산업이 어우러진 6차 산업, 복합적인 농수산식품 산업으로 키워 돈이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농어업에서도 부자 농어가가 나오고 성공한 농수산 기업인이 나오게 해야 한다. 네덜란드나 뉴질랜드, 덴마크, 칠레, 노르웨이가 작지만 강한 농수산업을 가지게 된 것은 처음부터 강해서가 아니라 세계와 경쟁하며,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면서 강해졌다는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농어촌 선진화를 위해 도농상생의 농어촌 지역공동체 회복에 나서야 하며, 고령화 등으로 농어업 선진화에 동참할 수 없는 영세 농어가를 따뜻하게 돌보는 특단의 소득 지원장치도 마련해야 한다.

이미 농어촌 인구의 60% 이상이 비농어업 부문에 종사하는 현실에서 농어촌은 더 이상 농어업이나 농어민 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이제 농어촌은 국민 모두에게 풍요로움과 휴식을 가져다 주며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정주 생활공간으로 개방돼야 한다. 베푸는 선심 농정이 아니라 당당한 선진 농정을 세우고 추진할 때가 됐다. 2008년이 기필코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함께 농어업·농어촌 선진화를 위한 선진 농정의 원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최양부 전남대 초빙교수·전 청와대 농림해양수석비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