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공기업 개혁 시험대 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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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서울지하철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 도시철도공사 노조가 다음달 1일 파업을 예고했다.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가 추진하는 인력 구조조정에 대한 반발이다.

이번 파업은 공기업의 대수술을 예고한 이명박 정부의 출범을 불과 20여 일 앞둔 상황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노사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에 따라 새 정부 출범 후 다른 공기업 구조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노조가 예정대로 파업에 돌입한다면 서울지하철 사상 처음으로 합법 파업이 된다. 국민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큰 사업장에서 노동위원회가 직권으로 파업을 못하게 막았던 직권중재 제도는 지난 연말로 폐지됐다. 따라서 예전처럼 지하철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공권력을 투입해 업무를 정상화하는 방식은 어렵게 됐다. 노조는 지난해 12월 찬반투표를 실시해 84%(4855명)의 찬성으로 쟁의를 결의한 상태다.

◇공기업 개혁의 시금석=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공약에서 “‘신이 내린 직장’이라 불리며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기업을 생산성 있는 공기업으로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추진하는 정부 조직개편이 마무리되면 다음 단계로 공기업 개혁에 본격 착수할 계획이다.

공기업 개혁에는 노동계의 반발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석행 민노총 위원장은 이달 초 “새 정부의 노동탄압이 이어진다면 철도와 항공기를 멈추고 전기 공급을 끊는 제대로 된 총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시철도노조가 민주노총 소속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위원장의 발언대로 철도를 멈추는 파업이 시작되는 셈이다.

박동운 단국대 명예교수(경제학)는 “공기업을 작고 효율적인 조직으로 구조조정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라며 “노조가 집단 이기주의로 국민을 불편하게 만든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업 쟁점은 인력 조정=최대 쟁점은 인력 구조조정이다. 현재로선 극적인 타협점이 없어 파업 가능성이 큰 편이다.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는 현재 6920명인 인력 정원을 2010년까지 10%가량(약 700명) 줄일 계획이다. 직원의 3분의 1(약 2300명)을 다른 업무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음성직 공사 사장은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라며 “인위적으로 직원을 해고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반면 노조는 사측의 이런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하원준 노조위원장은 “(사측이) 극단적 구조조정을 추진해 열차의 안전운행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파업해도 지하철 정상 운행=도시철도공사는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면 대체 기관사를 투입해 지하철을 정상 운행하겠다는 방침이다. 도시철도공사는 정상 운행에 필요한 인력을 2573명으로 산정하고 비노조원(3117명), 공익요원(1011명), 퇴직·용역 직원(580명)을 확보한 상태다. 열차 운행 간격은 평상시처럼 출퇴근 시간대는 2분30초~5분, 낮 시간대와 휴일은 6~8분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파업기간 동안 시내버스 운행은 오전 1시까지 연장된다.

서울시와 도시철도공사는 파업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2004년 대구지하철노조는 88일 동안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김상범 서울시 도시교통본부장은 “첫 1주일 정도는 정상 운행이 가능하지만 파업이 장기화하면 비상근무 인력의 피로가 쌓여 정상 운행에 차질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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