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76. 문화와 관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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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1년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집박하는 모습. 이 사진은 문화사절 ‘천년의 소리’ 미국 공연 프로그램에 실렸다.

 국악 발전에 큰 힘이 돼 준 몇 명의 관료가 있다. 1961년 문공부 장관을 지낸 오재경씨 또한 아주 열정적인 문화 관료였다. 한국전쟁 후 국악원 재건에도 큰 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는 불도저 식 업무 추진으로 재미있는 일화를 많이 남겼다.

그가 국악원에 와서 편종(編鐘)을 본 후 일이 생겼다. 편종은 16개의 종을 두 단으로 된 나무틀에 매달아놓은 타악기다. 오 장관은 너무 열정적인 나머지 “아니 왜 우리의 소중한 악기가 때가 낀 채로 있느냐. 모두 벗겨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쇠붙이로 만든 편종은 유구한 세월을 겪으며 검은색을 띠게 된다. 양처럼 순한 국악원 사람들은 꼼짝없이 종의 ‘때’ 벗기기에 전력을 기울여야 했다. 결국 그 종들은 종로시장에 나와 있는 유기그릇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것을 본 많은 사람이 눈살을 찌푸리며 비난했다. 하지만 설명을 들은 사람들은 장관의 의욕이 너무 넘쳤기 때문이라며 그냥 넘겼다. 국악원을 위해 많은 일을 한 장관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두 대통령 간 신경전에 국악계가 얽힌 이야기도 있다.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 더부살이를 하던 국악원은 88올림픽을 계기로 서초동 신청사로 이사했다. 현재 국악원 건물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건립됐지만 개원 직전 정권이 바뀌어 노태우 대통령이 취임했다. 때문에 문을 열 때 누가 테이프를 자를 것인가가 문제가 됐다. 결국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개관식에 참석해 테이프 커팅을 했다.

90년대 들어서는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미국에 사상 최대 규모의 문화사절 ‘천년의 소리’를 파견했다. 이 공연에서 여성 가야금 연주자 40명을 하나의 부채꼴 모양으로 앉히고 옷 색깔을 푸른색에서 점차 붉은색으로 바뀌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그가 냈다. 이 장관은 연습장에도 빠짐없이 찾아와 일일이 듣고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의 아이디어가 음악적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했다. 그의 작품이었던 이 공연 프로그램에는 이 장관이 양복을 입은 채 직접 집박(執拍·국악 타악기의 일종인 박을 치는 것)하고 있는 재미있는 사진이 실렸다.

91년 ‘천년의 소리’ 미국 공연에는 현지 신문 광고와 대사관·영사관 등의 적극적인 협조로 수많은 청중이 몰려왔다. 백남준에게 부탁해 예술·언론계 인사도 다수 참석하도록 했다. 현지 신문은 대단한 호평 기사를 실었다. 무대 뒤로 찾아온 교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외국에서 한국음악을 연주할 때는 아시아 예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오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들은 우리 음악에 대한 이해력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외 연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한다. 우리 음악에 관심이 있을 만한 현지인에게 홍보를 잘하고 그 사람을 관객으로 끌어들이는 게 필요하다. 이른바 ‘문화 브레인’이 많아야 하는 것이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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