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어링銀 사고주범은 위기관리 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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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베어링은행 사고의 진상은 과연 무엇인가.국제금융무대에서 제2의 베어링은행이 나올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2백33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최고(最高)의 은행그룹 베어링이 허망하게 무너진 후 대두됐던 이같은 의문들이 점차 풀리고 있다.
해답은 베어링은행 내부의 허술한 위기관리 시스템이 근본 문제였으며 제2의 베어링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쪽이다.
인디펜던트紙등 영국의 유력 언론들은『베어링이 궁지에 몰리기 오래전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잡히고 있다』며『베어링은 적어도 이번 사고가 터지기 1개월전에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사전에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결국 베어링은 파생금융상품(디리버티브)거래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내부 위기관리 시스템을 허술하게 가동한 결과 스스로 무덤을 팠다는 지적이다.
美 월스트리트저널도『베어링 사고이후 파생금융거래 전반에 대한문제제기가 활발하지만 이번 사고의 원인은 어디까지나 28세 직원의 무모한 행동과 이를 통제하지 못한 베어링 본사의 내부시스템에 국한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또 베어링과 달리 세계의 다른 대형 금융기관들은 파생금융거래와 관련해 2중,3중의 위기관리시스템을 갖추고있기 때문에 제2의 베어링은행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예를들어 유럽의 스위스은행이나 미국의 JP 모건,뱅커스 트러스트,시티코프등은 순간순간 바뀌는 파생상품의 계약내용과 가치변동을 24시간 감시하는 한편 손실폭이 일정 선을 넘으면 즉각 반대행동을 취하도록 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다.
게다가 전문 감시인력을 별도로 투입,독립적으로 위험을 관리토록 하는 2중의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낙관적 결론을 내리기는 각국의 금융당국들도 마찬가지다.영국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베어링에 대한 금융지원은 물론 파생금융거래에 대한 규제강화를 즉각 거부하고 나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미국은 베어링사고가 터진 이후 고개를 든 파생금융거래규제론을 일축함과 아울러 오히려 은행들에 대해 증권업과 보험업진출을 허용하는 금융규제 완화조치를 취했다.
이미 국제금융시장은 민간자본에 의해 완전히 장악된 상태다.파생금융거래는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분명 크다는 민간자본 스스로의판단에 의해 발전해온 것이다.각국 정부가 나서는 규제는 별반 가능하지도 않고 실효성을 기대하기도 힘들다.치열 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거나 죽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별 금융기관들의 위기관리능력에 달려있다.
『시장자율기능에 맡겨두는 것이 가장 강력한 규제』라는 영국과미국 금융당국의 선택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 크다.
金光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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