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천은 신뢰·약속 위에 이뤄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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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충남 태안군 구름포해수욕장에서 자신의 팬클럽인 ‘호박사랑’ 회원들과 함께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다. [태안=연합뉴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27일 태안 기름유출 사고 현장을 찾아 봉사 활동을 펼쳤다. 오전 11시쯤 창이 달린 니트 모자에 검정 파카 차림으로 태안군 구름포에 도착한 박 전 대표는 하얀 방제복으로 갈아입은 뒤 해변으로 내려가 기름 때 제거에 나섰다. 이날 행사엔 박 전 대표 측 의원 20여 명과 인터넷 팬카페 ‘호박넷’ 회원 5000여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경선 캠프 고문을 맡았던 서청원 전 대표도 함께했다.

 박 전 대표가 모처럼 정치 현안을 잊고 봉사활동에 나선 건 당내에 ‘평화모드’가 조성됐음을 의미한다. 악화일로를 치닫던 공천심사위 구성을 둘러싼 갈등은 23일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의 회동을 기점으로 봉합 국면에 접어들었다. 대체 이 당선인과 박 전 대표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을까.

 박 전 대표가 회동 이후 만족한 표정을 지은 데다 이튿날엔 자파 의원들이 반대한 공심위 구성안을 전격 수용함에 따라 당내에선 온갖 ‘이면합의설’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당선인이 박 전 대표 측 핵심의원 10명의 공천을 약속했다는 ‘10명 확약설’, 경선 당시 박 전 대표를 도운 의원 40여 명 중 30명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라는 ‘30명 약속설’, 박 전 대표 측 의원과 당협위원장 등의 지역구 80여 개 중 50개는 보장했을 것이란 ‘50명 보장설’까지. 그럴듯한 이름의 설들이 당내에 퍼졌다.

 그러나 양측의 핵심 인사들은 “두 사람 모두 기존 ‘여의도식’ 정치와 거리가 멀다. 숫자놀음식 이면합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차기 지도자는 박근혜’약속?=이 당선인의 핵심 측근은 27일 “당선인이 안정적 국정 운영을 위한 과반수 의석 확보가 목표이며 이를 위해 박 전 대표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이 당선인은 누가 공천을 받느냐보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며 박 전 대표 측 인사 중 다수가 국회에 입성하더라도 이 당선인의 지도력에 따라 모두 따라오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도 “박 전 대표가 정치 발전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이 당선인이 ‘계파에 치우치지 않는 공정 공천’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 당직자는 “이 당선인이 한승수 국무총리 후보자 내정 등 조각 방향을 설명하고 ‘차기 지도자는 박 전 대표’란 인상을 강하게 심어 줬을 것 같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박 전 대표는 27일 태안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신뢰와 약속의 바탕 위에서 공천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당선인을 그만큼 믿는다는 뜻이다.

 이 당선인의 한 측근은 “이 당선인이 비선조직을 통한 공천 작업을 중지시킨 것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며 “당선인은 양측 인사들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면 신뢰할 만한 사람을 통해 ‘나의 뜻이 아니다’란 점을 수차례 박 전 대표에게 전해 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 너무 순진했다” 지적도=일각에선 “박 전 대표가 너무 나이브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박 전 대표 측 의원은 “박 전 대표가 처절하게 공천 싸움을 벌여본 적이 없어 그런지 공천을 순진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며 “신뢰에만 기대는 것이라면 위험한 도박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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