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의신비>귀뚜라미 울음-목소리 큰 놈이 왕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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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귀뚜라미는 사회생활을 하는 곤충이다.그들은 깊은 밤에 혼자 울어대지만 그것은 순전히 님을 부르는 수컷의 울음소리다.가을에막 땅속에서 올라온 귀뚜라미 새끼들은 몸통은 어른 귀뚜라미와 비슷해도 날개가 다 자라지 않아 울음소리를 낼수 없다.이들이 날개가 자라 울음소리를 제대로 낼 때까지는 많은 경쟁관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실험적으로 수귀뚜라미들을 잡아 가두워 두면 곧바로 싸움이 벌어진다.두마리가 마치 펜싱이라도 하듯 긴 더듬이를 가볍게 마주쳐 보다 한놈이 힘에 부치다 느끼면 뒤로 돌아 달아나면서 금세승패가 결정나 이 서열싸움은 싱겁게 끝이 나고 만다.그러나 두마리가 힘이 대등하게 되면 이 싸움은 아주 거칠어지는 것이 보통이다.서로 머리를 마주 대고 밀고 밀리는 싸움이 수 분간 지속된다.이때 앞다리로 상대방의 등을 누르기도 하고,그래도 쉽게물러서지 않을 경우 입으로 상대 방의 다리를 공격한다.대략 이정도의 싸움에서 승패가 가려진다.
그러나 두 마리가 호적수일 경우에는 보통 여러날 계속된다.
밀리고 밀리는 싸움을 여러번 하게 되면 결국 최후의 승자만이우렁찬 소리를 낼 수 있다.그러니까 경쟁에서 밀려난 놈은 그 소리의 빈도가 적거나 울음이 세기도 아주 낮다.
다시 야외로 나가보자.야생의 귀뚜라미들은 서로 모여 산다.습기가 있고 가까이 먹이가 풍부한 곳에 귀뚜라미는 모이게 마련이다.그런 귀뚜라미들이 여기저기 무리를 짓게 된다.그러나 주의 깊게 관찰하면 한 무리에 틀림없이 소리를 우렁차게 내는 수컷이있고 그 주변에서 소리라고는 보잘 것 없는 수컷들이 모여산다.
여기에서 우렁차게 우는 귀뚜라미 수컷을「소리꾼」이라고 부르며,이 소리꾼의 주변에서 사는 놈들을「들러리꾼」이라고 부를 수 있다.종종 이 들러리꾼들은 소리를 따 로 낼 필요가 없다.소리꾼의 소리에 이끌려 오는 암컷들을 자기 아내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관찰에 의하면 소리꾼이 들러리꾼 보다 교미할수 있는 기회는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말하자면 소리꾼은 노력하는 만큼더 많은 자손을 퍼뜨릴 자격이 있는 것이다.
이런 소리에 의해 배우자를 유인하는 동물들은 많다.그 중에서청개구리도 한마리의 수컷이 울어대고 그 곁에서 덕을 보는 수컷들이 생겨난다.이때도 들러리꾼은 소리꾼보다 확실히 교미할 기회는 적다.그렇지만 소리꾼 옆에 있으면 소리를 따 로 내지 않고도 짝짓기할수 있다.뿐만아니라 이들은 합창하는 곳에 함께 모여야만 배우자를 유인 하는데도 그만큼 수월하다.멀리서 합창 소리에 이끌려 온 암컷들은 근접거리에서는 우렁찬 목소리를 선호한다.그런 실험은 아주 간단하다.소리가 큰 놈과 작은놈의 울음소리를 따로 녹음해 양쪽에서 들려주면 암컷은 대부분 소리가 큰쪽으로 옮겨간다.누가 우세한 자손을 남길 수 있느냐,즉 누가 더 소리가 크냐에 의해 이같은 곤충들도 진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朴 是 龍 〈한국교원대교수.동물행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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