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美.佛 무역 첩보전의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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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프랑스의 에두아르 발라뒤르 총리는 지난해 1월 큰 기대에 부풀어 사우디아라비아아라비아를 방문했다.미사일과 전함을 포함한 60억달러 어치의 첨단무기와 에어버스등의 판매계약 체결을 위해서였다.발라뒤르 총리는 그러나 서명직전 파드국왕이 새로운 계약조건을 요구하는 바람에 빈 손으로 돌아왔고 2개월후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미국이 중앙정보국(CIA)등 광범위한 정보망을 동원해 프랑스가 무기계약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의 고위 관리를 매수하고 후한재정조건을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입수,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압력을 넣었던 것이다.
결국 사우디아라비아는 에어버스 대신 보잉社와 맥도넬 더글러스社에서 항공기를 구입키로 했다.
같은 시기 프랑스는 아마존 일대의 환경보호와 마약밀매를 감시하기 위해 14억달러 규모의 첨단 레이더시스템을 건설하려는 브라질에 접근,계약을 마무리단계로 이끌고 있었다.
CIA는 이 정보도 입수,프랑스 톰슨社의 경쟁사인 미국의 레이턴社에 은밀히 넘겨줘 역시 계약을 중간에서 가로채도록 했다.
지난주 프랑스의 르 몽드紙가 공개한 美-佛간 기업스파이 공방전은 이렇게 시작됐다.프랑스는 지난 2년간 미국의 프랑스내 첩보활동을 감시해오다 CIA요원으로 추정되는 美외교관등 5명을 소환해줄 것을 미국측에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프랑스는 엑조세 미사일.미라주 전투기.잠수함등 무기산업에서 미국에 이어 제2위의 수출국가.여기에다 에어버스와 아리안 스페이스로 대표되는 고부가가치의 우주항공분야에서도 미국의 강력한 경쟁상대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양국은 냉전이후 정보기관의 역할을 기업첩보 수집에초점을 맞추고 있다.굵직한 계약에서 표면적으로는 제품의 가격과질로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듯 하지만 물밑에서는 정보기관을 총동원한 또다른 치열한 전투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 다.
경쟁국 주요기업의 기술개발과 시장전략등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보를 수집,적을 훤히 꿰뚫어보며 맞붙는 또하나의 머니게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건은 더 이상 공동의 적(敵)이 없어진 상황에서 국제무역은 이제 단순한 제품의 싸움이 아니라 고도의 첩보전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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