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거 글·글·글] “보고서 쓰는 법 좀” 높은 분들의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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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남성 전용 피트니스 센터의 마케팅 컨설팅을 한 적이 있다. 지금 고백하지만 그땐 남자라는 구매 타깃을 잘 몰라 어수룩했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한 ‘권유 마케팅’은 실패했다. 그때 확실하게 알게 된 고마운 것은(돈 벌어가며 배웠다!) 남자들은 구매 심리와 패턴이 여자와 전혀 다르다는 것.

즉 남자들은 친구 따라 강남을 잘 안 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자들은 좋은 게 있으면 삼삼오오 즐기지만 남자들은 절대 혼자만 알고 만다는 것. 그런 이유에서 내게는 글쓰기와 관련, 독(獨)선생을 해 달라는 의뢰가 많다. 덕분에 나는 이른바 높으신 양반들의 고민이 뭔지 속속들이 알게 됐다.

 한데, 오늘(16일) 아침 조인스닷컴 메인에 이런 기사가 떴다. ‘보고서가 10장이나 뭐 필요해’. 페이퍼를 못 써서, 써도 10장씩 장황하게 써서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 혼쭐난 관료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다. 나는 직접 들어서 안다. 이런 분들의 애로를. 이사님·상무님·전무님·사장님까지….

보고서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다 보니, 또 이분들이 현업에서 일할 땐 보고서니 하는 페이퍼 커뮤니케이션이 거의 없었던 때라 보고서·기획서·제안서 쓰기라면 겁부터 나고 학을 뗀다는 것. 하여 문서 작성을 잘하는 친구를 아래 직원으로 뽑기는 하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맥은 못 짚고 포장에만 열심이라 이 또한 성에 차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문서를 가지고 CEO나 상사에게 보고하려면 버벅댈 수밖에 없고.

 또 하나 환장할 노릇은 정년퇴임하면 사사건건 혼자 해결해야 한다. e-메일 하나 논리정연하게 쓰기 어려우니 ‘돈이 되는 글쓰기’를 다시 배우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 에고, 큰일나셨다, 이분들.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페이퍼는 딱 한 장이면 된다. 창의적으로 생각한 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핵심을 찌르는. 왜 안 될까?
 
 *이 글은 글쓰기 코치로 활동하고 있는 송숙희 중앙북스 기획위원의 블로그 ‘빵굽는 타자기’(blog.joins.com/scarf94)에서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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