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知性과 野性"외치던 참선생님 金相浹선생 靈前에 바칩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남재(南齋)선생님,선생 영전에 부복해서 삼가 영결의 말씀을 드립니다.연(緣)을 끊고 떠나신 선생께 무슨 말씀을 드려야 화답을 해주실지 적절한 사연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생애를 일제하의 질곡,광복후 국토분단하의 동족분열,이념의 혼란,정치발전과정의 진통,사회적 가치관의 혼미 등으로점철된 민족격동의 역사속에서 청년학생,그리고 국민과 더불어 고뇌하는 지성인으로 일관해 오셨습니다.
역사가 소용돌이칠 때마다 시대의 적극적인 논리와 윤리를 펴시는데 심혈을 기울이신 우국학자이셨습니다.학생들이 방황할 때는 학생들 곁에,그리고 국민이 오뇌할 때는 국민 곁에 나가서 계셨습니다. 대학가가 동요할 때 선생께서는 대학총장으로서 청년학생들에게「지성(知性)과 야성(野性)」이라는 정신적.행동적 지표를제시해 주셨습니다.이 명구는 대학인의 넓은 공감대를 형성,어느덧 고려대의 교시처럼 돼버렸습니다.이 명구가 주는 정신 은「어떻게 하면 불타는 정열과 냉정한 견식을 하나의 정신속에 담아 넣을 수 있을 것인가」했던 막스 웨버의 고뇌와도 상통하는 것이아닌가 합니다.학자는 많으나 교육자는 적다는 지금의 세태에 선생이야말로 이 두길을 고매한 경지에서 함께 지켜오신 분이시기도합니다. 선생께서 국무총리로 영입되었을때는「막힌데는 뚫고 굽은것은 펴고…」의 명언을 남김으로써 경색된 정치상황속에서 국민의숨을 돌려보려 하기도 하셨습니다.
학문적으로는 순자(荀子)의 학문의 길인 비이장목(飛耳長目)의길을 걸으셨습니다.내외에 걸친 폭넓은 학문적 섭렵과 긴 안목의역사적 통찰을 통해서 당신의 학문세계를 구축하셨습니다.당대의 명저로 전해지고 있는『모택동 사상』과 같은 연 구도 선생의 이러한 학문적 탐구의 소산이라고 생각합니다.이러한 소산은 또한 장안에 알려진 명강의를 통하여 후학들에게 전수되었습니다.
선생께서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있으시면서도 일단 선생께 접근하게 되면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 매력을 지니고 계셨습니다.
말씀은 부드럽고 친근하시면서도 뜻은 심연처럼 깊으신 언근의원(言近意遠)의 소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그래서 선■ 문하에는 영재들이 줄을 잇고 학은을 입은 후진들이 사회의 지도적 인물로 성장하여 선생의 유덕을 펴나가고 있습니다.
공자는 나이「70이면 소망하는 바에 따라가도 법도를 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선생께서는 70대에 들어서서 이 경지를 터득하신 것이 아니라 평생 지나친 결벽주의에 가까우리만큼 사회적 법도를 지켜오시며 전형적인 선비의 길을 걸어오셨습 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아직도 선생께서 그 심오한 경륜의 손을 끊으시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미개발.미성숙의 부문이 남아있습니다.
그럼에도 선생께서는 이 사회와 연을 끊으시니 비감함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5년전 선생의 고희 축연때 생에게 축사를 부탁하셔서 무사(蕪辭)몇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그중 속된 표현으로「우리 사회에 선생님처럼 팔자 좋은 분은 안계시다」는 말씀을 드렸었습니다.이 남부러운 팔자를 10년이라도,아니 5년이라도 더연장하시어 세상을 질정해주시고 후진 들을 채찍질하시며 복을 누려주실수는 없으셨는지요.
부질없이 서두르시는 성품도 아니신데,선생께서는 이러한 복을 마다하시고 서둘러 떠나셔야 할 길이 있으셨나 봅니다.
그 길을 가시면 부디 극락왕생하시어 더욱 큰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고이 영면하소서.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