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드라마가 뭐길래~ “3분의 1줄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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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작가 김수현(65)씨가 데뷔 40년을 맞았다. 가장 친숙하고, 영향력도 막강한 장르인 드라마로 한국인과 동고동락했던 김씨가 다음달 2일 시작되는 KBS2 ‘엄마가 뿔났다’(연출 정을영)로 작가생활 40년 이정표를 찍는다. 그는 1968년 MBC 라디오드라마 ‘저 눈밭에 사슴이’ 당선되며 방송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엄마가 뿔났다”는 김씨가 SBS ‘사랑과 야망’(2006년) 이후 2년 만에 시도하는 주말극. 지난해 SBS ‘내 남자의 여자’에서 중년남녀의 욕망과 갈등을 극대화했던 그가 다시 이 시대 가족의 의미를 곱씹을 예정이다. “나이든 사람 편안하게 그냥 좀 놓아달라”를 그를 전화로 붙들고 그의 작가인생을 되돌아봤다. 데뷔 40주년 소감을 묻자 “하하하, 그런 게 어디 있어”라는 호탕한 웃음이 터졌다.

 -40년은 긴 시간이다. 사연도 많았을 텐데.

 “그런가. 모르겠다. 계산을 해보지 않았다. 68년에 당선됐으니(방송은 69년 1월) 만 40년이 맞다. 숫자를 의식하고 살지 않는다. 전혀 실감이 나지 안는다. 꾸준히 글만 써왔을 뿐이다. 하나를 만들어 흘려 보내면 끝이고, 또 하나를 만들어 흘려 보내면 끝이다. 그런 거다.”

 -마치 도인 같은 말씀이다.

 “나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다. 오래 살아 보면, 나이가 들면 알 수 있는 거다. 하하하. 내가 말해 놓고도, 좀 닭살이다. 취소한다. 열심히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원래 중요한 게 없는 사람이다.”

 -‘엄마가 뿔났다’를 소개한다면.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가족극이다.

조금 라이트하게(가볍게) 갈 것이다. 소프트한 느낌도 있다. 어머니 김혜자를 중심으로 세 자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 남자의 여자’는 소재가 셌는데.

 “새 드라마는 주말 8시대에 방영된다. 가족들이 편하게 볼 시간이다. 여기에다 센 얘기를 휘저을 수 없다.”

 -40년이 정말 실감이 나지 않나.

 “시간은 의식할 때만 존재한다. 의식하지 않으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한마디 부탁한다.

 “지금까지도 내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있을 수 있게 한 시청자에게 감사한다. 그들의 힘이 나를 있게 했다. 많이 행복했다.”

 -어떤 행복인가.

 “내 적성에 확실히 맞는 일을 해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양, 그것을 대본으로 풀어내는 능력, 그 모든 것을 준 하늘에 감사한다. 적성에 맞는 일을 평생 했으니 행복하지 않겠나.”

 -대표작을 꼽는다면.

 “그런 건 없다. 드라마는 작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다. 감독·연기자·스태프 등 무수한 사람들이 참여한다. 어떻게 특정 작품을 고를 수 있겠나. 아프지 않은 손가락은 없다.”

 -미드(미국 드라마), 일드(일본 드라마)의 파워가 커졌다.

 “나도 화제작은 본다. 미드 ‘24’가 인상적이었다. 구조가 정교했다.”

 -한국 드라마는 어떤가.

 “얘기 하나 마나다. 엉성한 게 많다. 엉터리도 있다. 무엇보다 드라마가 너무 많다. 드라마 사태다. 지금보다 3분의 1 정도는 줄여야 한다. 그래야 작가들도 더 긴장하고, 더 공부하고, 더 다듬을 수 있다 .”

 -방송사가 드라마를 줄일 수 있겠나.

 “그래서 대책을 말하라면 공염불이 될 수 있다. 방송사의 논리는 오직 장사다. 광고 수익이 최고다. 드라마의 광고 기여도가 크니까 줄일 수 없을 거다.”

 -그 혜택을 가장 많이 본 편이 아닌가.

 “방송사 사장을 만날 때마다 부르짖는 말이다. 드라마 편수를 과감하게 줄이라고 당부한다. 양을 채우기 위한 드라마는 절대 없어야 한다. 드라마 같은 드라마를 만들어야 한다. 지금 작가들은 작품을 대기도 바쁜 상황이다. 이러다가 안티팬만 만드는 건 아닐지. 하하하.”

 -‘왕과 나’ 촬영장에서 쪽대본(당일 촬영 분량만 급하게 나오는 대본)으로 폭력사태까지 있었다. 최근 중견배우 이순재씨가 “최고의 히트작을 낸 김수현 작가의 경우 쪽대본을 한번도 준 적이 없다”고 말했는데.

 “쪽대본은 작가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정말 심각한 문제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작가의 능력이 달리면 드라마 전체를 미리 써서 방송사와 계약해야 한다.”

 -왜 그런가.

 “한 작품에 매달린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작가가 그 사람들에 폐가 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다른 사람을 고생시킬 권한이 대체 작가에게 있을 수 있나.”

 -방송사의 빠듯한 제작일정도 있지 않은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1주일의 여유는 있다. 정해진 날짜에 대본을 넘기는 건 작가의 책무다.”

 -언제까지 펜을 들 수 있을까.

 “글쎄. 내가 그만 쓰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하하하. 내가 펜을 놓고 싶을 때 깔끔하게 정리하겠다.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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