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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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나인 룰」이라는 것이 있다고 들었다.우리말로 옮기면 「아홉의 법칙」또는 「아홉의 관행」이라고나 할까.
40대라거나 50대,60대등 해당 연대의 머리수에 9를 곱하기 하여 얻어지는 숫자로 남성섹스의 적정 횟수를 추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물론 속설(俗說)이다.
이를테면 40대의 머리 수인 4에다 9를 곱하면 36이 된다. 3주에 6번이 적정 행위수다.
50대라면 5에다 9를 곱한다.45다.4주에 5번이 적정수.
60대의 경우는 6에다 9를 곱한다.54.5주에 4번 정도.
「적정수」라는 것은 「가능수」라고도 할 수 있다.
60대의 남성은 5주에 네번가량 행위를 할 능력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아리영 아버지는 60대 중반이다.그가 정정한 힘을 보인 것은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50대 초반에 이미 불능 상태가 된 남편이 매우 비정상적임을새삼 가늠하게 된다.
비로소 남편에게 연민을 느낀다.
충족된 육신이 너그러움을 낳고 있었다.
머리도 맑아졌다.뿌연먼지로 가득하던 뇌가 정결히 헹궈진 기분이다. 「정읍사」의 한 구절이 길례의 이마를 스쳤다.
전 져재 녀러신고요-.
이 「전」도 세가닥으로 쓰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첫째,가게로서의 전(廛)이다.
삼중으로 읊어진 「정읍사」의 겉노래에서「전」은 「가게」의 뜻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전 져재 녀러신고요」는 「가게 시장 열리셨나요」로 풀이된다.
「시장」,즉 「저자」의 옛말이 「져재」다.
옛 저자 가운데는 장마당에 멍석 깔고 물건을 내다 파는 노점(露店)이 많았다.그러나 「전져재」는 노점이 아니다.가옥(假屋)을 지어 전으로 삼는 큰 장을 이른 말일 것이다.
둘째,항아리나 병 따위의 물건 아가리 둘레의 너부죽한 부위,이것 역시 「전」이다.
여기서의 「져재」는 「젖어」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젖어」의 옛말이 「져재」인 것이다.
그러니까 「전 져재」는 「전 젖어」로 풀이된다.입구가 젖어 열렸음을 표현한 음사로서의 한 구절이다.
성종(成宗)이 노래 부르지 못하게 하고,중종(中宗)이 개사(改詞)까지 하게 한 연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셋째,성벽 둘레로서의 「전」이다.싸움 전(戰)의 뜻까지 얹혀쓰였던 것으로 여겨진다.「싸움에 져서 행여 성문이 열리지 않았겠지」하고 염려하는 구절인가.
달님에게 호소하는 겉노래.음사로서의 속노래.그리고 백제의 마지막 결전에 거는 속의 속노래.그 삼중 구조가 여기서도 보이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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