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환매 대비하라” 피델리티 긴급 지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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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과 유럽 증시 하락 여파로 전 세계 주식시장이 동반 폭락하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74.54 포인트가 빠진 1609.02로 마감됐다. 한국<右>·대만<中>·일본<左> 투자자들이 한결같이 심각한 모습이다. 김상선 기자 [도쿄·대만 AP=연합뉴스]

“고객의 펀드 환매에 대비하라.”

 세계 최대의 뮤추얼 펀드 운용회사인 미국 피델리티가 회사 소속 펀드매니저에게 내려 보낸 긴급 지령이다. 글로벌 증시가 이틀째 폭락하면서 주식형 펀드의 대량 환매(펀드런)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22일 “평소 펀드매니저에게 운용자산 전부를 투자할 것을 권하고 있는 피델리티가 최근 2%의 현금을 보유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피델리티 인터내셔널의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니키 리처드는 “주식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손실을 줄이기 위해 펀드 자금을 되찾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객이 대규모 환매 요청을 하면 피델리티 같은 기관투자가는 시장에서 보유 주식을 팔아 현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렇게 주식을 팔면 주가가 떨어져 고객이 다시 환매 요청을 하는 악순환에 빠진다. 아직 구체적으로 나타난 대량 환매는 없지만 주식시장의 약세가 지속되면 환매 압력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 드러나는 서브프라임 부실=세계 증시의 동반 폭락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 수 없다는 불안감과 미국과 세계 경제가 동반 침체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어우러지면서 일어났다. 각국 증시가 동반 하락하면서 불안은 공포로 증폭됐고 주식 투매로 이어졌다. 21일엔 중국과 독일·프랑스 금융회사들이 서브프라임과 관련한 추가 손실을 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시장에 충격을 줬다. 중국 상업은행들의 손실 가능성도 악재였다. 중국 정부가 이들 은행에 서브프라임 관련 투자로 입은 손실에 대해 충분한 충당금을 쌓으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중국 언론이 22일 전했다. 일본 증시의 경우 엔화가 오르면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우려된 혼다자동차 등 수출 기업의 주가가 직격탄을 맞았다.

 서브프라임 손실로 신용등급이 떨어진 암박 같은 채권보증회사도 증시엔 위협적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날 암박이 보증한 채권의 신용등급이 함께 떨어지면서 유럽 기업들의 부도 위험이 사상 최고로 높아졌다고 보도했다.

악영향은 한국에도 미치기 시작했다. 미국의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암박이 보증하고 SC제일은행이 발행한 두 가지 채권의 신용등급을 부정적 관찰 대상에 올린다고 22일 발표했다. 만일 등급이 떨어지면 이 채권을 보유한 투자자는 손실을 입을 수 있다.

 크레디 스위스 에셋 매니지먼트의 밥 파커 부회장은 블룸버그TV에서 “이런 시장 상황을 돌려놓을 수 있는 촉매를 찾기 쉽지 않다”며 “금융회사의 손실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하반기는 돼야 회복 가능”=증시 전문가들은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드리운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주가가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일본 담당 전략가인 가미야마 나오키(神山直樹)는 “미국과 일본의 주요 기업 실적을 본 다음 주식을 사려는 투자가들이 많아 당분간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론 미국의 경기 부양책이 성공을 거둬야 하반기께 주가가 회복되는 국면을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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