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만든다는 자율형 사립고 100개 가능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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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추적 서울 혜화동에 있는 동성고 김웅태 교장은 최근 동창회 간부의 연락을 받았다.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21일 만난 김 교장은 “평준화 교육에 찌든 사학에 새로운 탈출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구체적인 전환 방법도 구상 중이다. 김 교장은 “가톨릭 재단의 특성상 사제직을 희망하는 학생을 한 반 정도 뽑아 예비 신학생 교육을 시키는 방식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성고뿐 아니라 서울 경희여고·보성고·서라벌고 등도 동문회나 재단 차원에서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고려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 공약에 대한 사학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학들은 자율형 사립고가 고교 체제 전반을 뒤흔들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사학들은 그러나 전환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다.

학생선발권을 제한하거나 재정지원이 없을 경우 학교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사립초중고등학교법인협의회도 최근 이런 사학들의 의견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학재단의 일부 젊은 경영인은 자율형 사립고의 모델과 운영 방식을 연구하는 모임까지 만들었다.

 ◇최대 관심사는 학생 선발권=자율형 사립고와 관련해 사학들의 최대 관심은 학생 선발권이었다. 학생 선발권에 있어서 정부 규제가 여전하다면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학이 많다. 현재 거론되는 학생 선발 방식은 선발고사가 없는 ‘선지원 후추첨’ 방식이다. 선발고사가 없어져야 ‘귀족학교’ 논란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립 A고 재단 관계자는 “자율형 사립고가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학생을 뽑아야 한다면 전환하는 학교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하는 학생을 뽑을 수 없다면 사학재단이 정부 지원금을 포기하고 돈을 들일 만한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학부모와 수험생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추첨으로 배정한다는 데 등록금을 두세 배 더 낼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재정 지원이 성공 열쇠=새 정부의 공약에 따르면 자율형 사립고는 등록금을 일반고의 세 배까지 받지만 정부 지원금은 받지 못한다. 또 재단은 등록금으로 받는 돈의 10% 이상 되는 돈을 학교에 쏟아 부어야 한다. 이태훈 경희여고 교장은 “자율형 사립고는 누구나 욕심이 있다. 재단 전입금이 등록금 대비 5% 수준이라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M학원 설립자 이모씨는 “(자립형 사립고처럼) 매년 수십억원씩 투입해야 한다면 자율형 사립고를 신청할 학교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시내 199개 사립고(전문계고 포함) 중 교직원 4대 보험의 법정부담금을 재단 측에서 100% 내는 사학은 17곳에 불과했다. 그만큼 재정상태가 나쁜 것이다.

사립 B고 재단 관계자는 “법인전입금을 늘리기 위해선 법인 재산을 고수익 자산에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며 “부동산 차익과 같은 수익에 세제혜택을 주면 재정 문제가 상당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율형 사립고에 대해 정부가 재정 지원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점철 계성여고 교장은 “수업료를 세 배 받으며 ‘자율 교육’을 하라면 경제적으로 상위층 학생밖에 안 올 것 같다”며 “저소득층 아이들도 창의적 교육을 받을 수 있게 정부가 재정적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노필·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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