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장춘, 조국 농업에 바친 삶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22면

우장춘 박사. 그는 1950년대 자본과 기술의 부족으로 황폐해진 한국 농업의 부흥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 육종학자다. 그는 종자 수입국이었던 한국을 종자 수출국으로 탈바꿈시키고, 척박한 한국의 육종 산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육종학자로 인정받던 우장춘, 그는 왜 편안한 길을 포기하고 가난한 조국을 선택했을까. 3.1절을 앞두고 그 의미를 함께 생각해 본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 도쿄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구한말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연루돼 일본으로 망명한 우범선. 어머니는 일본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계(家系)에 대한 속죄의 마음으로 어머니와 처자식을 모두 일본에 남겨두고 한국에 와 조국의 육종 발전을 위한 연구에 모든 것을 바쳤다.

우장춘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은 '씨앗의 독립'을 이룰 수 있었고, 해방 후 절망뿐이었던 농촌은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치열한 '종자 전쟁' 시대에 독자적으로 생존해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던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