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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에게 희망 찬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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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른들이 만든 잘못된 제도의 고통을 온몸으로 감내한 56만 수험생이 대견할 뿐이다. 이제 정시모집 합격만 기다리고 있는 청춘들은 3월에 대학생이 된다. 꿈 많고 희망이 넘치는 새내기들. 그들의 가슴엔 벌써 캠퍼스를 누비며 미래를 향해 질주하겠다는 정열이 타오르고 있을 터다.

 그러나 걱정이 앞선다. 입시지옥을 뚫고 들어간 대학이 과연 그들에게 ‘희망 찬가’를 들려줄 수 있을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새 교육제도의 초점을 자율에 맞추고 있다. 경제를 살리겠다며 강조하는 ‘기업 프렌들리 (friendly)’ 못지않게 대학에 힘을 실어주려는 ‘대학 프렌들리’ 의지도 강해 보인다. 전국 201개 4년제 대학 총장모임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총회(4일)에도 방문했을 정도다. 총장들에게는 “정부가 아무리 떠들면 뭐하냐. 결국 교육도 대학이 각자의 소임을 다할 때 잘되는 것이며 정부는 도우미 역할에 그쳐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율성을 극대화해 대학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옳은 생각이다. 하지만 입시에만 매달려 어떻게 잘 가르칠지에 대한 고민과 준비가 적었던 대학들이 잘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대학진학률은 세계 최고다. 고교 졸업자의 84%가 전문대를 포함한 대학에 들어간다. 미국·일본·유럽은 50%도 안 된다. 그러니 한국이 교육과잉(over-educated) 국가라는 지적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졸 인력이 풍부하다는 것은 국가적으로는 엄청난 자원이고 큰 장점이다. 문제는 교육의 질과 사회 흡수력이다. 교육부가 얼마 전 낸 지난해 4년제 대졸자의 취업률 자료를 보면 취업 대상자 24만7424명 가운데 68%(16만8254명)만이 일자리를 얻었다. 그나마 정규직은 12만여 명에 불과했다. 대졸자 10명 중 5명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이른바 ‘88만원 세대(월급 평균이 88만원 의미)’나 ‘백수’로 살아가는 것이다. 서울대도 마찬가지였다. 정규직 취업률이 50%를 밑돌았다.

 젊은이들의 절망감은 심각하다. 서울 상위권 대학을 나와 2년째 비정규직을 맴도는 고향 후배는 “취업 필수조건이라는 학점·인턴·영어 실력·자격증·봉사활동 ‘5종 세트’를 갖췄지만 문턱을 넘지 못했다”며 “대학생이 되는 89년생 여동생도 자신처럼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대학생에게 희망 찬가를 들려주려면 새 정부와 대학이 각고의 노력을 해야 한다. 조선시대 가장 뛰어난 지도자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은 기근이 들자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며 남다른 지도력을 보였다고 한다. 말을 앞세우기보다는 곡식 품종 개발과 의창제도 개선, 왕실 곳간 열기 같은 실천을 했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도 ‘대학생은 국가경쟁력의 하늘’이라는 생각으로 젊은이들의 아픔을 씻어줄 일자리 창출에 나서길 바란다.

 대학들의 반성과 노력은 더 절실하다. 언제까지 뽑는 경쟁에만 급급해 잘 가르치기 경쟁을 회피할 셈인가. 자율을 누리려면 책임감과 개혁의지, 경쟁 마인드 재무장이 필수적이다. 기업이 왜 대졸 신입사원을 써먹을 수 없다고 불만인지, 커리큘럼과 교수들의 문제점은 뭔지 진단해 희망의 교육을 해야 한다. 대학진학률은 세계 1위인데 국제경쟁력은 밑바닥인 현실도 곱씹어 보자.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2007년 매긴 우리나라의 대학교육 경쟁력은 세계 55개국 중 40위다. 대학들, 정말 잘해야 한다.

양영유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