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개혁이것이과제다>2.변호사 소수의 횡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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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방의 한 군청 7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盧모(53)씨는 지난해 7월 관내 한 건설업체 사장으로부터 50만원을 받았다.평소각종 사업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준 대가였다.그러나 이를 안 다른 업체 간부가 검찰에 투서를 했고 급기야 盧씨 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가족들은 부랴부랴 관내에서 제법 유명하다는 L모 변호사를 선임했다.수임료는 2백50만원.
그러나 며칠 있으면 보석으로 풀려날 것이라던 盧씨는 풀려나지않았다.가족들은 애를 태우며 변호사를 다시 찾았고 변호사는「보석석방」을 조건으로 사례비 3천5백만원을 추가로 요구했다.없는살림이라 깎아줄 것을 호소했으나 통하지 않아 盧씨 가족들은 빚을 낼 수밖에 없었다.
한달후 보석으로 석방된 盧씨는 뒤늦게 이를 알고 깜짝 놀랐다.뇌물액수의 75배에 이르는 3천7백50만원을 변호사 수임료로바쳤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었다.결국 盧씨는 빚을 갚겠다는 생각에 자신에게 뇌물을 주었던 업체사장을 찾아가 그 동안의 각종 불법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해 2천5백만원을 뜯어냈다.이 때문에 盧씨는 또다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천정부지의 변호사 수임료가 또다른 범죄를 부른 셈이다.
개정되는「변호사 보수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다음달부터 형사사건의 경우 기존 수임료보다 두배이상 올라 이와 비슷한 사건의 재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착수금과 성공보수금이 각각 기존 5백만원 이하에서 1천만원 이하로,5천원 이상 1 0만원 이하이던 상담료도 3배인 30만원이하로 뛰었다.최소 1천만원 정도가 없으면 변호사선임은 꿈도 꾸지 말라는 얘기다.
변호사 수임료를 외국과 비교하면 우리가 얼마나 비싼지 극명해진다.단순비교만 하더라도 독일의 10배,미국의 3배 정도며 GNP를 감안하면 독일의 40배,미국의 12배나 된다.그럼에도 우리의 변호사들은 착수금과 사례금을 구분해 요구하 는 경우가 많다.13일 열린 한 토론회에서 서울대법대 권오승(權五乘)교수가『수임료 결정을 변호사에게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고 한 말이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서울변호사회에 접수된 변호사에 대한 소송의뢰인의 진정(1백67건)중 62%인 1백1건이 과다수임료 환불요구다.다음은 불성실 변론으로 61건(36%)을 차지했다.
돈은 턱없이 비싸게 받으면서도 변론은 불성실하게 하는 변호사-.「나라가 허가한 도둑」이라는 속설이 나온 연유일 것이다.
과다 수임료 횡포는 무엇보다 변호사 숫자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데서 비롯된다.2월 현재 국내 변호사는 3천5백여명으로 인구 1만명당 1.27명 수준이다.미국의 1만명당 변호사수 31명은 차치하고라도 프랑스의 4.28명,독일 의 11.5명,영국의 12명에 비하면 한심한 수준이 아닐 수 없다.
몇년전 서울지법과 서울지검 간부로 재직하다 개업한 K씨와 A씨.이들의 지난해 한달 평균 수입은 1억여원이나 됐다.이같은 엄청난 고소득의 비결은 변론이 뛰어나서도 아니고 서비스정신이 두드러져서도 아니다.이른바 전관예우(前官禮遇)덕이 다.퇴직후 1년까지는 전관(前官)의 부탁을 가능하면 모두 들어준다는 법조계 관례 때문에 굵직굵직한 사건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세계화시대에 대비한 변호사 교육은 아예 없다는 말이 정확하다.현재 대한변협이 실시하고 있는 자체교육이란 1년에 2박3일 코스로 두번 지방과 서울에서 세미나겸 현장실습을 하는 정도다.
갈수록 복잡 다양해지는 국제관계법과 국제분쟁에 대 비한 변호사전문화는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서원대 김재원(金宰源)교수는『미국 변호사협회의 경우 1908년부터 법조윤리 규범을 채택,현재 대부분 주가 이에 따라 변호사 보수기준을 90단계로 세분하고 있으며 과도한 수임료 요구가있을 경우 곧바로 법적 징계절차를 밟는다』면서『 우리도 비리 변호사에 대한 단순 징계보다는 이를 막기 위한 법적 장치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한다.한기찬(韓基贊)변호사도『미국이나 서유럽 국가들처럼 변호사 재교육을 제도화해 일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 매년 한달정도 국내외 각기관에 연 수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한번 시험에 붙으면 판.검사 또는 변호사로 평생 권력과 명예에다 부까지 누릴수 있는 전근대적 사법제도 아래서 「시민을 위한 법률서비스맨」이어야할 변호사는 시민위에 군림하는 관료아닌관료조직처럼 적폐가 커지 고 있는 것이다.
〈崔熒奎기자〉 ◇도움말 주신분▲金哲洙서울大법대교수▲權五乘서울大법대교수▲金宰源서원대교수▲朴壯雨서울민사지법부장판사▲韓基贊변호사▲朴元淳변호사▲金春鳳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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