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韓쌀.북한물자 교류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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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남한 쌀과 북한 샘물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들수 있는 물꼬가 트였다.超교파 기독교 단체인 선명회가 30만t상당의 쌀.밀가루.
옥수수를 북한에 제공하고 북한이 생고무.샘물.광석을 보내주기로합의한 것은 非상업적 차원의 남북 물자교류가 재개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지난 90년초 추진된「사랑의 쌀」운동 이후 중단됐던 非상업 물자교류가 재개됨으로써 남북관계에 적지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특히 이번 남북 물자교류 협의과정에서 평가할 대목은 평양이 보여준 유연한 태도다.
북한은 종전같으면 받아들이기 어려운 남한의 양곡 제공 제의를『우리도 그에 상응하는 물자를 제공하겠다』며 선뜻 받아들였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곧 등장할 김정일(金正日)정권의 실용주의적인 정책 전개를 예고하는 시사로도 해석할 수 있 다.
물론 북한이 이같은 실용주의적인 자세로 돌아선 이면에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한 南측 선명회의 세심한 배려가 상당히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우선 형식 논리상으로 보면 이번 대북(對北)양곡 제공의 주체는 남한의 사회단체인 한국선명 회가 아닌 국제선명회로 돼있다.
또 주목되는 점은 이번 양곡 제공이 무상지원이 아닌 물물교환과 유사한 바터 형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명회와 고려민족산업발전협회간의 합의문에 따르면 남측이 30만t 상당의 양곡을 북한에 무상으로 제공하면 북한은 그 보답으로 샘물.생고무.광석을 남측에 보내주고 경우에 따라 5년 이내에 무이자로 상환하도록 돼있다.식량을 받는 북측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경우에 따라 상환할 수 있다」는 문구를 삽입한 것이다. 북측이 이제까지 재미(在美)실업가를 전면에 내세워온 것과 달리 정무원의 부총리급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고 보도를 허용한 것도 이런 배려때문에 가능했다.
南측이 제공할 30만t 상당의 양곡을 돈으로 환산할 경우 5백억원에 해당된다.그러나 남북관계를 지켜본 전문가들은 이번 대북 식량 제공은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업이 정치적인 의미가 배제된 순수한 동포애 차원에서 이뤄진데다 남북 당국 모두가 성사를 위해 한발짝씩 물러나는 성숙한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 식량제공은 향후 남북관계 물꼬를 트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즉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 접근은 정부가 남북 당국간 대화를 주도하고 그 수준에 맞춰 여타 경제.사회.문화 분야의 접촉 수준과 빈도를 조절해왔다.
그러나 이제 이번 대북 식량 제공을 계기로 기존의 정부 주도형 정책에서 탈피,보다 유연한 남북 사회간 접근을 신중히 검토해야 할 것같다.
〈崔源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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