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스 희롱하는 수백 개의 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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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호 18면

사진 · 타이베이 AFP=연합뉴스

이파리 연(鳶), 날치(飛魚) 연, 사람 얼굴 형상의 연….

뜻밖에도 수백 개의 연을 ‘친구(?)’로 갖게 된 장제스(蔣介石, 1887~1975)는 어떤 감회일까.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대만민주기념관’에 있는 장제스 동상 주변에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연들이 걸려 있다.

원래 장제스의 호를 따 ‘중정(中正) 기념당’으로 불리던 이곳은 2년 전 ‘대만민주기념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7개월간의 새 단장 끝에 새해 첫날 문을 열면서 개최한 게 바로 연 전시회다. 주제는 ‘별밤의 찬란한 무도회’. 한 달 예정의 전시회는 12일 대만 총선을 겨냥해 집권 민진당이 야당 국민당을 공격하기 위해 ‘선거용’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수백 개의 연엔 ‘대만 민주의 벽’을 세운다는 의미가 담겼다고 한다.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을 꾀하는 민진당의 주장이 담겨 있는 셈이다. 참관객들이 장제스 동상을 배경으로 ‘장제스=권위주의 통치=국민당’이라는 인식을 느끼게 했다는 지적이다. 이는 천수이볜 총통과 민진당이 2000년 정권교체에 성공한 이후 줄기차게 추진해 온 ‘장제스 흔적 지우기’ 노력과도 궤를 같이한다.

민진당은 정권을 잡은 뒤 ‘장제스 국제공항’을 ‘타오위안(桃園) 국제공항’으로 개명했다. 장제스가 1949년 대만으로 건너온 뒤 관저로 처음 사용한 ‘차오산싱관(草山行館)’은 방화 사건을 당해 소실됐다. 이 불로 대만의 제1호 주민증인 장제스의 국민신분증, 부인 쑹메이링(宋美齡)과의 결혼 청첩장 등이 연기 속에 사라졌다. 장제스의 수모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만 정부는 모든 거리에서 ‘장제스’ 이름 석 자를 없앴다. 지난달 23일엔 장제스·장징궈(蔣經國) 부자의 묘역 문을 닫아 일반인의 참배를 불허하는 조치까지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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