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스펀 명성도 흔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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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번에 붕괴할 거품은 그린스펀의 명성일지 모른다’.

 미국 경제가 침체 위기를 맞으면서 앨런 그린스펀(81)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2006년 물러난 그린스펀은 18년 반의 재임 기간 동안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며 미국 경제를 쥐락펴락했다.

 그린스펀에 대한 비판은 주로 2000∼2005년에 벌어진 미 부동산 시장 과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그린스펀이 금리를 올리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너무 오랫동안 금리를 낮게 끌고가는 바람에 집값이 폭등하는 화를 불렀다는 얘기다. 그 바람에 지난해부터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경제 저술가인 에드워드 챈슬러는 “미국 가계의 자산이 늘어나면서 그린스펀의 명성이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며 “경제가 나빠지면 ‘수퍼 스타’로서의 그의 지위도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흔들리고 있는 것은 그의 명성만이 아니다. 그가 재임 중 틀을 잡아놨던 통화정책의 방향도 바뀌고 있다. 벤 버냉키 FRB 의장은 이미 전임자의 자유방임형 시장접근법을 상당 부분 버렸다.

FRB 부의장을 지냈던 앨런 블라인더 프린스턴대 교수는 “그린스펀의 평균 성적은 ‘A’나 ‘A+’지만 통화 정책 과목만큼은 ‘B’를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린스펀은 이런 공격에 대해 분통을 떠뜨렸다. 그는 “통화 정책의 한계를 무시한 (결과론적인) 비판”이라며 “주택시장의 거품은 통화 정책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과잉 저축에 의해 비롯됐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카네기멜런대 앨런 멜처 교수는 “그린스펀은 위대한 FRB 의장이었지만 오랜 저금리의 위험을 무시한 것은 실수”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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