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새해특집] 경제성장 이젠 ‘에너지 외교’ 에 달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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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러시아 연해주 정부, 에너지경제연구원은 지난해 말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4개국 전문가가 참여하는 동북아 에너지 국제 세미나를 열었다.

 1980년대 이후 에너지 정책은 ‘찬밥’ 대우를 받았다. 중장기 에너지 정책 수립에 등한했으며 에너지 확보 외교도 미흡했다(서울대 김태유 교수). 에너지 관련 공기업의 민영화도 중단됐으며(인천대 손양훈 교수), 전문가들의 고유가 시대 대비책 주장에 정부는 귀담아 듣지 않았다(원자력연구원 박창규 전 원장).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 5월 “한국은 장기적 관점에서 에너지 수급과 시장 개혁, 국제적인 네트워크 강화에 힘써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에 육박하면서 이제서야 비상이 걸렸다. 올해 경기를 낙관하던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앞다퉈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고 있다. 동북아 에너지 전문가 회의의 논의 내용을 소개한다.

 ◆"동북아 국가들 협력해야”=류지철 에너지경제연구원 동북아 에너지연구센터 소장은 “동북아 공동 에너지 시장을 형성하기 위해 동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의 석유·천연가스·석탄 매장지를 공동 탐사·개발하자”고 제안했다. 연해주 정부의 게르만 즈베레프 대외협력·관광국장도 “동북아 국가들의 경제 발전 프로그램은 에너지 자원을 기반으로 짜여 있기 때문에 이들 국가의 에너지 분야 협력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김영일 나홋카 주재 북한 총영사관 경제무역 영사는 “연해주는 우리와 아주 근접한 지역이며 최근 러시아 측이 나진·선봉 지역의 투자를 위해 현지조사를 했다”며 “동북아 지역의 에너지 협력이 실질적으로 강화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속화되는 에너지 위기=일각에선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은 “우리 경제가 견딜 수 있는 마지노선은 130달러”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내 소비 에너지의 97%를 해외에서 들여온다. 전문가들은 국제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오르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1.2% 내려앉는 것으로 분석한다. 석탄과 천연가스도 비상이 걸렸다. 연간 8500만t의 유연탄을 수출했던 중국은 지난해부터 수출을 전면 중단했다. 발전용 유연탄의 31%를 중국에 의존했던 한국으로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이다. 급히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지로 수입선을 바꾸고 있지만 이미 중국이 싹쓸이하고 있어 이마저 여의치 않다.

 유연탄 국제시세도 지난 1월 t당 66달러에서 11월 113달러(CIF 기준)로 배 가까이 폭등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소비하는 액화천연가스(LNG) 확보도 난제로 등장했다.

 ◆전문 관료가 없다=정부는 에너지 문제를 등한시해 왔다. 70년대의 오일쇼크 이후 저유가 시대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에너지 문제를 총괄하던 동력자원부를 산업자원부에 흡수시켰고, 공기업들은 보유하던 해외자원을 대거 매각했다.

 방기열 원장은 “중국이 내년에 에너지 관련 부처를 신설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에너지부와 같은 독립된 에너지 행정조직 신설이라든가 에너지 전문 관료의 양성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50~100년을 내다본 중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의 수립과 실천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손양훈(인천대) 교수는 “급변하는 에너지 정세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려면 에너지 관련 공기업의 민영화가 해답”이라며 “이명박 정부는 민영화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창규 전 원자력연구원장은 “우리가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원자력 발전에 더욱 역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편한 외교관계가 걸림돌=중국 에너지연구소 조우 펑치 고문은 “지역 내 국가 간의 불편한 관계가 우선 개선돼야 한다”며 “러시아는 최근 에너지 수출가격을 크게 올리고 있는데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가격을 제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류지철 소장도 “러시아는 에너지를 상품이 아니라 전략적 무기로 보고 있다”며 “신뢰할 만한 에너지 공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한·중·일 등 동북아 국가들은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에너지 수입액은 865억 달러인데, 이 중 러시아는 겨우 2000만 달러에 불과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것.

 루슬란 굴리도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극동지부 경제연구소 소장은 “한국이 러시아 석유를 파이프 라인을 통해 도입하려면 북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역 정세가 불안정하면 주변국의 안정적 에너지 수급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수력발전 회사인 하이드로 OGK의 빅토르 미나코프 수력발전소장은 “한·러 간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북한을 에너지 시장에 편입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취재팀=김영욱·안성규·이봉석·유철종·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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