晩學만세-영문과 67세 嚴基德.사학과 61세 金珍浩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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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환갑이 넘은 할아버지 만학도 2명이 11.8대1의 경쟁률을 보였던 서강대의 올 학사편입시험에 당당히 합격,손자뻘 젊은이들과 대학생활을 시작한다.
서강대는 26일 21개 학과 34명 정원에 4백3명이 지원한학사편입시험에서 67세 엄기덕(嚴基德.서울마포구도화동)씨가 영문과에,61세 김진호(金珍浩.서울종로구청운동)씨가 사학과에 각각 합격했다고 밝혔다.
「배움의 길엔 끝이 없고 할아버지도 손자에게 배운다」는 우리속담을 그대로 보여준 것이다.嚴.金씨 모두 서울대를 졸업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명성을 쌓으며 평생을 열심히 일한뒤 은퇴했다.
嚴「할아버지(?)」는 49년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한뒤 무역업체에서 평생을 일하다 정년퇴직했다.
『무역업을 하면서 영문으로 된 서류들을 많이 접하게 됐는데 필요한 말만 익히고 어려운 내용은 다 젊은이들에게 떠넘겼었지요.이제 영어를 제대로 공부해 영어로 된 문학작품을 실컷 읽었으면 합니다.』 6명 정원에 86명이 지원해 14대1의 치열한 경합을 벌였던 영문과에 합격한 嚴씨가 밝힌 입학동기다.
嚴씨는 면접때 교수들이 놀라며 『선생님보다 나이가 적은 교수들로부터 강의를 들으며 신세대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실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공부에 무슨 나이가 있겠습니까.잘아는 사람에게 모르는 사람이 배우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라 고 대답했다. 직장생활 30년간 빠짐없이 등산을 해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嚴씨는 영어실력을 더 쌓아 외국인들을 통역해주는 봉사활동도하고 싶다고 했다.
8명이 지원해 단 한명만을 뽑은 사학과에 합격한 金씨는 57년 서울대 상과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주택은행 부행장보를 거쳐최근까지 항도투자금융 대표이사로 근무했던 금융인출신.
金씨는 25일오후 『합격자 발표일인 27일까지 돌아오겠다』는말을 남기고 친구들과 함께 부산으로 등산길에 나서 아직 합격사실을 모르고 있는 상태다.
金씨 부인 윤정숙(尹貞淑.59)씨는 합격사실을 기자로부터 전해듣고 『남편이 편입시험을 치른후 마음이 뒤숭숭하다며 여행을 떠났다』며 『남편은 직장생활에 쫓기면서도 항상 한국사연구를 할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새로운 길을 개척해 보겠다 고 얘기하곤했다』고 말했다.
尹씨는 『남편이 지난해 8월 항도투자금융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난 후 역사를 체계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대학3학년으로 편입하겠다는 뜻을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모두가 흔쾌히 반겼다』며 『수영.등산으로 단련돼 체력적으로도 젊은 대학생들에게 결코 뒤지지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郭輔炫.金玄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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