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우익武力단체 조직계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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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中央日報社 현대사연구소가 미국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아낸 국내관련 문서들은 해방직후 찬반탁 논쟁과 좌우익의 갈등이 격화되는 시점에서 우리 민족지도자들의 통일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처음으로 밝혀주는 것이어서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특히 임시정부 내무부장 신익희(申翼熙)의 정치공작대와 행정연구회는 그동안 존재했었다는 사실만 알려진 채 자세한 조직이나 활동은 밝혀지지 않았는데 이번에 입수한 문서에는 이들 조직을 자세히 파악할 수있는 문건들이 다수 발견됐다.
미군정보참모부가 수집한 이들 문서 가운데 46년께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필사본 계획서는 남북한을 각각 나누어 비상정권 수립을 위한 방안을 상세히 적고 있다.또 다른 계획서에 따르면 좌익지도자들을 테러로 제거하고 46년8월29일 서 울운동장에서열리게 돼 있는 국치일 행사를 계기로 전국적인 시위에 돌입,남한에서는 행정부 건물들을 점거하고 미군정으로부터 행정권과 입법권을 인수한다는 것이다.또 북한에서는 임시정부를 보호할 잠복우익무력단체를 사전에 조직하고 비상행정 요원 획득.우익 정당 설치 등을 통해 사태를 장악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같은 계획은 46년2월 신익희의 정치공작대와 행정연구회가 소속된 임정계의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위원회와 조선독립촉성중앙협의회가 통합하면서 민족지도자인 이승만(李承晩)과 김구(金九)의 이름아래 진행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계획이 처음 실천에 옮겨진 것은 김일성(金日成).강양욱(康良煜.김일성의 외조부뻘).최용건(崔庸健).김책(金策)등 좌파지도자의 제거 행동이었다.신익희는 김정의(金正義).김형집(金亨集).최기성(崔基成)등 3명을 북한으로 밀파,46년3 월1일 평양(平壤)역 광장에서 열린 3.1절 기념식장의 김일성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케 했다.그러나 수류탄은 연단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폭발,소련군 1명만 부상하는 불발로 끝나고 만다.
이승만과 김구의 합작으로 설립된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부의장을맡고 있던 신익희는 좌익지도자 제거 계획과 병행해 거사 자금마련에 나서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돈을 마련했는데 기부자 명부와 영수증들이 다수 발견돼 당시의 활동을 문서로 입증할 수 있게 됐다.또 충청남도의 정치적 상황및 사상적 성향 보고서를 비롯한 지역별 관청의 공무원 명단이 함께 발견된 것으로 미뤄 거사를 위한 전국적인 실태 파악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전국적으로 거사를 감행할 날짜로 잡은 것은 46년8월29일,장소는 국치일 행사장인 서울운동장이었다.거사 날짜가 다가오면서정보참모부의 각종 정보보고는 건수가 대폭 늘어난다.이들이 파악한 정보도 거사일에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고 정부 건물을 점거,미군정에 행정권.입법권의 이양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사계획은 미군정의 신익희 억류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노선을 굳힌 이승만의 만류로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거사 당일 서울운동장에는 기념식만 조용히 치러지고 이후 좌익이 주도하는 9월 총파업 등을 겪으면서 좌우합 작 노력을 포기한 미군정이 남한단정 정책으로 돌아서 분단의 길로 접어들게됐다. 〈金祥道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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