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서울대학교>1.교수 연구실적.강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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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국립 서울대학교.해방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 사회를 이끈수많은 지도자를 배출해 온 인재의 산실이다.어느 시인은『누가 조국의 가는 길을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게 하라』고 예찬했다.반면 서울대의 제반여건이 세계 대학중 5백 위권에도 못미친다는 평가가 있는가 하면『천재를 뽑아 바보로 만들어서 내보내는 대학』이라는 혹평도 심심찮게 들린다.세계가 한 울타리가 되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교육의 국제경쟁력 확보가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서울대의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전에 없이 드높다.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인 만큼 서울대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내년으로 개교 반세기를 맞는 서울대의 교육.연구.시설.행정.재정여건 등 실상과 허상을 점검해 세계 속의 명문대로 거듭날 수 있는 발전방향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註] 서울대 교수진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정상급 학자들의 집단이다.
이들이 분야별로 국내 학계를 선도하고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사람은 별로 없고 야심찬 젊은 학자라면 누구나 서울대 교수 자리를 꿈꾼다.
과연 이들은 명성에 걸맞은 연구결과를 내놓고 전국의 수재들만모였다는 서울대생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양질의 강의를 제공하고 있는 것일까.
『Publish or Perish』(논문을 쓰지 않으면 쫓겨난다)는 선진국 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금언이다.
연구업적 논문을 내놓지 못하면 연구비를 타 올 길이 막막해지고 승진.호봉승급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교수직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따라서 교수들의 연구능력을 발표논문수로 평가하고 비교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보편적 방법이다.서울대연구처가 펴낸 연구업적집에 따르면 서울대교수 1천2백77명이 93년 한햇동안 발표한 논문수는 1인당 4.58편.
이중 학술회의나 각 대학별 논문집.회갑논문집 등에 발표된 것을 제외한 순수학술지 게재논문은 1인당 1.91편이고 엄격한 심사로 질적 수준을 보장받는 해외학술지 발표논문은 1인당 0.
46편에 그쳤다.교수 1명이 2년이 지나도■ 국제 적으로 공인받을 만한 수준의 논문 1편을 못쓴 셈이다.
논문발표가 비교적 활발한 공대의 경우도 해외발표 논문이 1인당 1.13편에 머물렀다.
전공.학과별로 편차가 있고 국내의 특수한 사정이 있긴 하지만미국의 중.상위 주립대들이 1인당 연간 2편 정도를 승진및 정년보장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비춰보면 서울대의 많은 교수들은「쫓겨나야」한다는 결론이다.
〈芮榮俊기자〉 교수들은『週9시간의 강의.대학원생 지도.각종 행정업무등의 부담에다 턱없이 부족한 연구비.연구시설등 악조건을고려하면 이만한 결과를 내는 것도 기적에 가깝다』고 항변한다.
공대 연구지원소장 이장규(李章揆.제어계측)교수는『공대연구비가5억원이었던 82년 해외논문이 0.1편이었으나 이후 연구투자가늘어나 지난해는 1백80억원이 됐고 논문도 10배이상 증가했다』며『교수들의 잠재력에 비춰볼 때 지원과 투자 만 제대로 이뤄지면 선진국수준으로 도달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했다.하지만『미국에서는 조교수들이 승진에 누락되지 않으려고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다 보니 이혼율이 가장 높은 직업이 됐다지만 외부용역을딸 때마다 차가 바뀌는 국내 교수 님들을 보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는 공대 박사과정 金모(31)씨의 말은 연구실적 차이가 반드시 여건탓만은 아님을 시사한다.외국에 비해 현저히 뒤처지는연구성과도 문제지만 강의수준도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부실강의」가 많다는 것이 학생들의 오랜 불만이다.
서울대의 교과과정은 90년 개편후 아직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총학생회는『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는 학문과 지식의 흐름에 부응하는 강의가 부족하다』며 교과과정 개편을요구하기도 했다.
서울대생들 사이에는 공부않고도 손쉽게 점수를 딸 수 있는「전략과목」들이 오래전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과제물 부담이 적고 해마다 같은 시험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선배들로부터 전해받은 모범답안만 잘 외우면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컴퓨터통신망「천리안」의「서울대생 동호회」란에 실려 있는 글은더욱 충격적이다.
법대 모교수의 강의를 수강하던 학생이 시험을 앞두고 컴퓨터를통해 S.O.S를 치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교수님의 중간고사는 세 문제입니다.소문에 따르면 채점도 안한다고 합니다.기말고사와 기말리포트에 신경쓰면 될겁니다.기말리포트는 이른바 선풍기식 채점법이므로 양만 채우면 됩니다.기말고사 다섯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학생들이 컴퓨터통신등 첨단기법을 동원해 가며 강의정보를 주고받는 동안 몇 년째 같은 교재로 같은 시험문제를 내는 교수들의 무성의가「공부않고 편하게 졸업하는 학생」을 양산(量産)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서울대가 마련한「교수업적 관리.평가규정」에는 오래전부터 학생들이 요구해 온 강의평가 항목이 빠져 있다.
『학문적으로 미숙한 학생들이 교수의 강의를 평가하면 교권이 떨어지고 인기위주의 강의로 흐르기 쉽다』는 반대론이 우세해 강의평가는 배제되고 교수들이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설문조사만 권장사항으로 채택됐을 뿐이다.
그러나 지난해 도입된「고전읽기강좌」가 매시간 과제물제출등 수강생의 부담이 컸지만 토론식 수업과 교수들의 열성적인 강의로 큰 호응을 얻었고 설문조사에서도 학생들이 후한 평가를 내렸던 사실은,강의평가에 대한 교수들의 반론이 기우에 불 과할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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