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엘리뇨의 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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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엘니뇨는 스페인어로「아이」를 뜻한다.크리스마스 무렵 찾아오는불가사의한 태평양의 이상(異常)난류현상을 수백년전 남미(南美)의 페루 어민들이 그렇게 이름붙였다.「예수의 아이」라는 함축이다. 한번 닥치면 몇달씩 머무르고 바닷물이 더워져 고기가 놀지않는다.흉어(凶漁)가 거듭되면서 어느새 짓궂은「악동」(惡童)으로 변했다.
적도부근 태평양 해상에서 2년내지 7년주기(週期)로 생겨나 도처에 기상이변을 몰아온다.습하고 더운 공기의 대이동이 일으키는「물결효과」로 겨울폭우와 이상난동을 빚고,심한 가뭄과 혹서도안긴다. 지난 40년간 세계는 9차례 엘니뇨를 겪었다.82~83년은 금세기 최악으로 기록된다.91년에 시작해 93년말에 끝난 엘 니뇨가 가장 최근의 것이다.
이「짓궂은 아이」가 주기를 무시하고 불과 1년만에 다시 돌아왔다. 지난주 태평양쪽 미국 서부해안에 겨울폭우가 쏟아지고 동부쪽은 낮기온이 섭씨20도를 웃도는「엘니뇨의 봄」을 누렸다.엘니뇨는 태평양의 해류와 무역풍간의「댄스」로 표현된다.
보통때는 무역풍이 동쪽으로 강하게 불어 중부태평양 상공의 기온을 차갑게 유지하고 폭우를 인도네시아쪽 더운 바다 상공에 한정시킨다.
이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중부태평양 상공의 기온이 더워지고 여기서 형성된 방대한 비구름이 대기에 카오스를 몰아온다.미국 중서부의 물난리,호주(濠洲)및 아프리카지역의 극심한 가뭄,유럽의봄장마,일본의 긴 여름장마등 근년의 기상이변은 이 엘니뇨의「조화」다.한국도 열외(列外)는 아니다.
모르는 속에서 겪었을 뿐이다.
엘니뇨의 발생원인은 아직도 안개속이다.지구온실화에 많은 혐의가 가지만 과학적 거증(擧證)은 요원하다.
영국의 길버트 워커경이 발견한 태평양 기압골의 주기적 시소현상,소위「남쪽 진동」(Southern Oscillation)은엘니뇨 의 주기와 거의 맞아떨어진다.
이 둘의 영어 머리글자를 따「엔소」(ENSO)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국가간 의제(議題)가 되고 있다.
짐바브웨등 아프리카에 가뭄경보,미국남부와 페루.동남아등에 예상외로 많은 비가 예고되기 시작했다.
최근 10여개국에서의 콜레라 발생도 기상이변과 무관하지 않다고 한다.
우주의 신비를 터득한 아인슈타인은『신(神)은 짓궂지는 않다』고 했다.그러나 범인(凡人)들 눈에 엘니뇨의 변덕은 그저「짓궂은 아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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