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사르코지는 왜 르몽드를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주 프랑스에서 가장 큰 뉴스는 ‘장관 평가제’였다. 정부가 장관의 실적을 체크해 점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사르코지다운 개혁에 프랑스 사회가 떠들썩했다.

 기자는 이 뉴스도 흥미로웠지만 더 관심이 가는 건 이를 르몽드가 특종 보도했다는 사실이다. 르몽드는 사르코지 정부에 가장 비판적인 언론이다. 예컨대 사르코지의 슬로건인 ‘더 일하고 더 벌자’도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조명하는 데 신경을 쓴다.

 프랑스에서는 적당히 눈감아 줬던 사생활도 성역이 아니다. 전 부인 세실리아가 사치스럽고 제멋대로라는 뜻으로 마리 앙투아네트에 처음 비유한 것도 르몽드였다. 지난해 대선 1차 투표에서는 르몽드 사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직접 사설을 써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을 찍어 달라고 호소했다. 선거 때 한 표가 아쉬운 후보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이 경쟁 후보를 찍어 달라고 했으니 사르코지가 얼마나 서운했을지 짐작이 간다.

 지난해 8월 사르코지는 직접 르몽드 편집국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 얘기는 뭐라고 써도 좋으니 제발 세실리아 얘기는 좀 쓰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그러자 르몽드는 대통령이 전화를 걸어 부당한 요구를 했다는 기사를 다시 대문짝만하게 실었다. 사르코지는 또 한 번 망신을 당한 셈이다.

 르몽드의 비판적인 시각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르몽드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부와 가장 불편한 관계에 있는 언론이지만 르몽드는 사르코지의 개혁 정책 등 중요한 이슈를 특종 보도하고 있다.

 한국의 지난 5년이 되돌아봐진다. 2003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 공무원들이 달라졌다. 어제까지 가깝게 지내던 간부급 공무원들도 “나 좀 살려줘. 중앙·조선·동아 기자를 만나면 나 잘려”라며 손을 저었다. 정부와 사이가 좋지 않은 보수 언론이 정부 정책을 특종 보도하면 발설자를 색출한다며 조사했다. 심지어는 보수언론이 먼저 보도한 정책은 뒤집어버린다는 말까지 들렸다.

 르몽드가 장관 평가를 특종 보도했지만 엘리제궁이 누설자를 색출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정부 대변인은 보도 내용을 즉시 사실로 확인해줬다.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말처럼 언론과 ‘프렌들리’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보기 싫은 언론 망신주는 데 골몰해 나랏일까지 바꾸며 낭비한 시간이 아까울 뿐이다.

전진배 파리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