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동차100년사>1.국가경쟁력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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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자동차 대중화 시대를 맞아 자동차는 이제 우리생활의 일부분이됐다.1백년의 세계 자동차 산업사를 통해 자동차의 과거와 현재를 알아보고 미래 자동차 산업의 발전방향과 모델의 변천등을 조명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편집자註] 1945년 8월14일 일본의 패전선언 바로 전날.도요타자동차의 본사 공장인 도요타(豊田)시의 고로모(擧母)공장이 폭격으로 날아갔다.
7년전에 야심차게 세운 공장이었다.전후(戰後) 바로 취해진 미국 점령군사령부의 자동차 생산금지조치가 풀리기까지 꼬박 1년걸려 복구됐다.
그리고 작년 6월11일 창업자 도요다 기이치로(豊田喜一郎)탄생 1백주년을 기념해 나고야(名古屋)에 세운 도요타산업기술기념회관의 개막식날.
참석자들은『도요타인들이 폭격을 하루만 피했다면 도요타가 세계최대,최고의 자동차회사가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과연 폭격이 없었다면 그렇게 됐을까.
문명이 번영하는 수명(壽命)에는 일정한 법칙성이 있다고 한다. 게이아이(敬愛)大의 후지오카(藤岡明房)교수는 「f=3200/2의X乘」이라는 도식으로 문명의 길이(f)를 계산했다.
군사력.자금(國富).기술혁신을 종합변수(x)로 0에서 8까지넣어본 것이다.
피라미드로 대표되는 이집트문명은 3천2백년,폴리스를 중심으로한 그리스문명은 8백년,배와 말(馬)과 농업을 중심으로 한 로마는 4백년.
또 증기선과 철도로 상징되는 대영제국은 1백년,대량생산 시스템과 하이웨이의 미국은 50년,교통통신 네트워크의 고밀도 국가인 일본은 25년이다.
그렇다면 일본(도요타)의 경우 폭격이 오히려 수명연장에 도움이 된 것은 아닐까.
또 다음「x=8」이 아시아라면 아시아의 부흥은 「현명한 방향성」이 없는 한 이 도식으로 너무 빨리 끝날지도 모를 일이다.
패자(覇者)의 조건은 압도적인 기술력과 경제력.막강한 군사력에 세계통치전략을 곁들여야 한다.그러나 패자가 되면 이러한 조건이 세계지배를 위한 공공재(公共財)로 쓰여 망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역사속에 담긴 패러독스다.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이러한 배리(背理)의 법칙을 그대로 방증해 준다.
영국에선 175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했다.1768년에는 하그리브스가 자동직기를,1825년에는 스티븐슨이 증기기관차를 발명했다.그 언저리에서 자동차 기술도 비치기 시작한다.이러한 기술진보는 앨빈 토플러의 「제2의 물결」 이다.
폴 케네디의 『대국의 흥망』에선 1820년대 영국을 묘사하고있다.1명의 노동자가 자동직기 몇대로 20인분 몫을 하고,1대의 증기기관은 마차 1백대분의 화물을 운반할 수 있게 됐다.
19세기 중반에는 세계에서 생산된 제조품의 3분의1이 영국제였고 석탄.철강.면제품의 절반이 영국에서 생산된 것이었다.7개바다에 걸쳐 지배력을 행사하면서 「세계의 공장」으로 군림했다.
영국에서 독일.미국.일본으로 이어지는 산업혁명사의 이면(裏面)에는 자동차산업사가 꼭 붙어다녔다.
자동차산업사가 지금은 세계경제의 흥망사를 대변하는 정도로까지여겨지고 있다.그렇다면 테크노 헤게모니를 쥐었던 영국은 왜 오늘날 산업과 국가경쟁력을 가늠하는 지표로써 경제전쟁의 유력한 무기가 되는 자동차를 놓쳤을까.
오는 2000년에는 세계보유 7억4천만대,연간수요 6천1백만대로 예상될 만큼 성장한 자동차산업.그것을 놓고 벌여온 세계 산업전쟁은 드라마틱하다.
지금 자동차산업사의 물결은 정점(頂點)이 일본에 머무르고 있으나 곧 아시아로 넘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더한다.그러나 역사는 꼭 비가역적(非可逆的)인 것만이 아니기에 돌이켜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東京=郭在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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